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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한일 관계

아베의 '폭주'...한일 '경제전쟁' 속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 측의 거센 반발과 미국의 중재 등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는 28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2일 결정했다. 지난달 4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이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2차 보복조치’다.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됨에 따라 일본과 거래하는 한국기업들의 물품 조달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한국 경제에 파장이 불가피해졌다. 한국 정부는 총력 대응을 선언, 한·일 간 ‘경제전쟁’으로 치닫게 됐다. 한·일은 그동안 과거사와 독도 문제 등으로 대립하기는 했지만 경제협력을 기반으로 반세기 이상 관계를 증진시켜왔다. 일본의 일방적 조치는 안보 분야로 불똥이 튀고, 한국 국민들의 대일 여론도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제 양국 관계는 1965년 수교 이후 최악의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주재로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은 각의 후 기자회견에서 개정안을 오는 7일 공포해 28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화이트리스트는 일본 정부가 수출관리 제도의 적정한 운용을 인정하는 나라로, 군사목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물품·기술을 수출할 때 절차 간소화 혜택을 준다. 현재 미국·영국·독일·아르헨티나 등 27개국이 지정돼 있다. 2004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화이트리스트로 지정된 한국은 우대국 명단에서 빠지는 첫 국가가 됐다.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국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전략물자로 규정된 물품 대부분에 대해 원칙적으로 사전 심사를 받아야 하는 등 수출 절차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화이트리스트 대상일 때는 3년에 한 차례 포괄허가만 받았다. 이런 품목이 857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당장 대일 의존도가 높은 정밀공작기계·탄소섬유 등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또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품목 중 군사적 전용 우려가 있다고 일본 정부 등이 판단할 경우 개별 허가가 필요하다. 일본 정부가 품목 선정이나 심사기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셈이다. 이번 조치가 한국을 일본의 ‘안보우호국’에서 뺀다는 것을 공식화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세코 경제산업상은 “대항조치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한국에 대한 우대조치를 철회하고 대만 등과 같이 취급하는 것으로 금수조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강제징용 판결에 반발, 지난달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함께 고시했다. 미리 짜놓은 각본에 따라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대응책을 한국 측이 내놓지 않을 경우 계속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 판결에 응하지 않는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강제매각 절차를 진행 중이어서 현실화할 경우 일본이 추가 보복 조치에 나설 수 있다. 지금 양국 사이에는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가 막혀 있다. 양국 관계가 벼랑 끝으로 다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