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참의원 선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축배를 안겨줬지만 과제도 남겼다. 자민당과 공명당 등 집권여당이 과반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획득해 ‘아베 1강’ 독주가 더욱 탄탄해졌지만, 개헌 발의선은 유지하지 못하면서 숙원인 개헌의 향방은 불투명해졌다. 참의원 낙승을 발판으로 아베 정권이 강제징용 판결을 둘러싼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조치 등에 어떻게 나설지 주목된다. 예고한 추가 보복조치를 거둬들이지 않으면서 양국 간 갈등이 한층 격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여당 ‘완승’…개헌선 유지는 실패
이날 참의원 선거로 집권여당은 선거를 치르지 않은 의석 70석을 합쳐 전체의석 245석의 과반인 123석을 훌쩍 넘어섰다. 여당은 특히 이번에 선출하는 124석의 과반으로, 사실상 ‘승패 라인’으로 간주했던 63석을 가볍게 웃돌았다. 아베 총리로선 2012년 중의원 선거 이후 이번 선거까지 대형 국정선거에서 6연승을 기록하면서 정권 운영에 탄력을 받게 됐다.
사실 이번 선거는 일찌감치 여권의 승리가 예상됐다. 한 자릿수 지지율인 야당들의 힘 부족에 더해, ‘강한 경제’를 앞세운 ‘정권 안정론’이 연금이나 증세 등의 이슈를 키우려는 야당의 시도를 가로막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베 총리가 “매우 어려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고 ‘앓는 소리’를 한 건 개헌 발의선 확보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임기가 2021년 9월까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 결과로 만들어진 구도가 개헌 추진 여부를 사실상 결정하게 된다. 일본 헌법은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3분의 2 찬성으로 개헌안을 발의한 뒤 국민투표의 과반수 찬성으로 개헌을 확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의원(465석)에선 자민당(284석)과 공명당(29석)만으로 개헌선(310석)을 확보한 상태다.
개헌세력이 참의원 전체의 3분의 2 의석에는 미치지 못하면서 개헌론은 벽에 부딪치게 됐다. 아베 총리가 “(개헌을) 확실히 논의하는 후보를 고를지, 심의조차 하지 않는 세력을 고를지 결정하는 선거”라고 호소해온 만큼 개헌론 점화에는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군대 보유와 무력 사용을 금지하는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게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기도 하다. 2020년 개정헌법 시행을 목표로 해온 아베 총리로선 전략을 수정해야 할 상황에 몰렸다.
아베 총리가 개헌 시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개헌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해온 국민민주당이나 무소속 의원 등을 끌어모아 ‘개헌 연대’를 만들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이날 밤 TV 방송에 나와 “적어도 ‘제대로 논의하라’는 국민의 목소리를 받았다.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진행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아베 총리가 이르면 연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단행한 뒤 총재 4연임을 시도할 것이란 억측도 나온다.
■아베 “한국이 답을 가져와야”
참의원 선거가 여당 완승으로 끝나면서 징용공 판결을 둘러싼 보복조치를 본격적으로 만지작거릴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등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그간 선거 지원에 몰두해온 만큼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강경 대응 분위기를 잔뜩 부추겨온 만큼 발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아사히TV 개표방송에 출연해 한·일 정상회담 요청 여부에 대해 즉답을 피하며 “한국이 청구권 협정 위반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안될 것”이라며 “한국이 먼저 답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일 청구권협정은 한국과 일본이 전후 태세를 만들면서 서로 협력하고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구축하자는 협정”이라며 “이런 협정에 대해 위반하는 대응을 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앞서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지난 19일 일본이 정한 제3국 중재위원회 구성시한(18일)까지 응하지 않은 한국 정부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보복조치를 시사했다.
일본 언론에선 예상 가능한 조치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수출관리 강화 대상 품목 확대, 비자 발급 요건 엄격화, 관세 인상, 일본 기업 압류재산 매각 시 손해배상 청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르면 내달 하순쯤 전략물자 수출 간소화 대상인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한다고 예고하고 있다. 보복조치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한국 정부를 압박해 나가는 한편, 한국 측 대응에 맞춰 구체적인 조치와 발동 시기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으로 보인다.
현재 일본 정부는 경제보복 조치 이후 ‘자유무역 역행’ 등의 비판이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는 점을 고려해 국제여론전을 준비하는 등 ‘숨 고르기’를 하는 모습이다. 아베 정권이 한국과의 갈등 상황을 유지해갈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간 북한 핵·미사일 위기를 정권 부양에 활용해온 것처럼 이번에는 ‘한국 때리기’를 국내 정치에 활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아베 총리로선 임기 후반기로 갈수록 구심력 약화를 막아야 하는 입장이다. 한국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보수층을 계속 잡아두기 위해서도 추가 조치를 쉽게 거두어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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