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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한일 관계

스텝 꼬인 일본...남탓, 발뺌 하며 숨 고르기

 일본 정부가 한국을 겨냥한 수출 규제 조치를 두고 또다시 앞뒤가 맞지 않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북한까지 끌어들여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관리 문제를 흔들어대다가 한국 측 반격에 직면하자 “맞지 않는 지적”이라고 한국 탓을 하고 있다. 지난 1일 기습적인 규제 조치 발표 이후 고삐 풀린 듯 공세를 펼치더니 뜻대로 되지 않자 한 발을 빼는 모습이다.
 17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 조치가 “안전보장상 수출관리 운용의 재검토”로 “대항조치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일관되게 설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조치가 정치적·경제적 동기에 의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의 지적이 틀렸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조치 발표 때 “한국이 징용 문제에 대한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까지 제시하지 않았다”고 사실상 ‘대항조치’임을 시인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전날 “문 대통령 지적은 전혀 맞지 않는다”고 정면 반박해 ‘외교 결례’ 지적을 받은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도 지난 3일 트위터에 같은 이유를 댔다.
 일본 정부는 전략물자의 ‘북한 유출설’에 대해서도 발을 빼고 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은 전날 “한국에서 전략물자가 북한에 유출된 의혹이 있다는 것은 일본 정부의 발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 유출설을 부풀린 것은 일본 정부·여당과 일부 일본 언론이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지난 5일 “군사 전용이 가능한 물품이 북한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고 했고, 보수 성향 후지TV는 “에칭가스(불화수소)를 한국에 수출했는데 행방이 묘연해졌다. 행선지는 북한”이란 여당 간부의 말을 전했다. 하기우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최측근으로, 이 정권의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지난 7일 “국제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무역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조치가 한국의 대북제재와 연관된 것임을 시사했다. 북한 유출설이 일본 정부 발언이 아니라는 주장은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 격인 셈이다.
 일본 측이 남 탓과 발뺌으로 맞서는 데는 이번 사안이 뜻대로만 굴러가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규제 조치에 대해선 미국 뉴욕타임스가 “세계 무역질서의 물을 흐린다”고 지적하는 등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 조치의 배경으로 강제징용 문제를 언급했다가 ‘경제 보복’이라는 비판을 받자, ‘신뢰 손상’을 들면서 북한 연루설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본 정부의 수출관리 체제가 오히려 허술하다는 자료들이 제시되고, 한국 정부가 양국의 수출통제 체제 위반 여부를 국제기구 조사에 맡기자고 요구하는 등 반격에 직면하고 있다.
 이처럼 명분도, 논리도 안 맞는 행태는 이번 사안이 아베 총리와 주변 인사들이 ‘한국을 손봐줘야 한다’는 보수 여론에 편승한 정치적 판단에 따라 진행된 것임을 방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정부 발언은 아니다’라는 고노 외무상의 말은 ‘절반의 진실’은 담고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세계무역기구(WTO)를 비롯한 국제 여론전을 대비해 숨을 고르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오는 23~2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일반이사회에선 이번 조치를 둘러싼 한·일 간 치열한 공방전이 예상되고 있다.
 한국 측에 대한 보복 조치도 속도을 조절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측이 요구한 제3국 중재위 설치 시한인 18일을 지나더라도 당장 국제사법제판소(ICJ) 제소 등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산케이신문은 이날 “일본 측은 ICJ 제소를 서두르지 않을 방침”이라면서 “한국 측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호소해가면서 일본 기업의 자산현금화를 염두에 둔 대항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ICJ 제소 등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한국 측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