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보복조치에 나서면서 안보 문제를 지속적으로 건드리고 있다. 당초 ‘양국 관계 신뢰 손상’을 내세우다가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관리에 “부적절한 사안이 있었다”며 확인되지 않는 설을 잇따라 흘리는 ‘살라미식 전술’이다. 안보 문제를 내세워 세계무역기구(WTO)를 포함한 국제 여론전에 대비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을 ‘안보 문제국’으로 몰아가려는 교묘한 전술인 만큼 치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의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한·일간 신뢰 관계 손상’을 주요한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등 한국 측 대응과 관련돼 있음을 사실상 시인했다. 하지만 “무역을 정치의 도구로 썼다” 등의 비판이 국내외에서 빗발치자 ‘안보상 이유’를 부각시키는 전술로 바꿨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 7일 “국제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무역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조치가 한국의 대북제재와 연관된 것임을 시사했다. 앞서 아베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5일 “군사 전용이 가능한 물품이 북한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고 했다. 후지TV 계열의 FNN은 “에칭가스(불화수소)를 한국에 수출했는데 행방이 묘연해졌다. 행선지는 북한”이란 여당 간부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전략물자의 북한 유출설을 잇따라 제기한 것이다.
일본 측은 급기야 사린가스 반출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NHK는 9일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 “사린 등 화학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물자가 한국으로부터 다른 나라로 건네질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린가스는 1995년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독가스 테러’ 당시 사용돼 일본인에게 부정적 인식이 뚜렷하다.
한국 정부는 “불화수소가 북한을 포함한 유엔 결의 제재 대상국으로 유출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일본이 근거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조금씩 정보를 흘리고 있다.
이런 대응은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한 비판론을 돌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안보상 이유를 명분으로 WTO 제소 등 한국 측 대응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WTO 규범인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21조는 ‘전쟁 도구, 핵분열성 물질 등과 관련한 자국의 필수적 안보이익 보호’를 위해 수출입을 규제하는 것을 예외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WTO에 제소하기 위해선 우선 양국간 협의를 요청하고, 여기에서 60일 이내에 해결이 안되면 WTO 분쟁처리위원회 설치를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위원회의 판단이 나오기까지 일반적으로 적어도 1년이 걸린다. 일본 측으로선 분쟁 해결 절차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내다보고 근거가 애매한 ‘부적절한 사안’을 들어 이번 사태를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북한 문제를 엮어서 안보와 관련한 한국의 국제적 신용을 떨어뜨리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긴밀한 협조하에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나 대북 제재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발언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신을 부채질해 이른바 ‘코리아 리스크’를 부각시키려는 전술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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