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관리가 의구심이 간다는 억지뉴스를 키우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측과 일부 언론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국의 수출관리 체제의 신뢰도를 흔들어 대(對)한국 수출 규제 조치가 필요하다고 몰아가려는 것이다.
극우·보수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11일자 1면에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 정부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로 전용가능한 물자를 시리아, 이란 등 북한의 우호국에 부정 수출했다며 복수의 한국 기업을 행정처분한 것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 산업통상자원부가 작성한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 현황’에 2016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처분 대상이 142건이었다고 소개했다.
산케이는 특히 “생화학무기 원료로 전용할 수 있는 물자나 사린 원료 등이 북한과 우호 관계에 있는 파키스탄, 이란, 시리아 등으로 갔다”면서 “생화학무기 관련물자를 파키스탄, 이란, 시리아에 부정 수출하는 행위는 국제무역관리체제인 ‘호주 그룹’에 저촉돼 각 가맹국이 부정 유통을 강하게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또 이번 수출 규제 대상이 된 불화수소도 아랍에미리트연합(UAE)로 밀수출됐다고 했다. ‘적발’ 현황을 ‘부정 수출’로 바꿔친 것이다.
산케이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이유로 ‘수출 관리상의 부적절한 사안’을 지적했다”며 “다수 기업이 부정 수출을 기도, 적발된 사실은 한국에서 전략물자의 부정한 국제유통에 대한 안일한 의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은 전날 산케이 계열 민방인 후지뉴스네트워크(FNN)의 보도 내용과 흡사하다. FNN은 한국 정부 자료를 입수했다며 “한국에서 무기로 전용가능한 전략물자가 밀수출된 사례가 2015년부터 지난 3월까지 156건에 이른다. 한국의 수출관리 체제에 의구심이 간다”고 보도했다. 적발 현황의 기간과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하고 있다는 점 정도만 다를 뿐이다.
산케이신문은 앞서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푯하기 하루 전 이를 보도했다. FNN은 지난 5일 여당 간부의 입을 빌려 “불화수소가 북한에 반출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앞서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는 FNN 보도 내용에 대해 “무허가 수출 적발 현황은 정부가 매년 공개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오히려 우리의 수출 관리 제도가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반박했다. 일본이 문제삼는 불화수소도 북한에 수출된 게 아니며, 원산지도 일본이 아니라 한국 혹은 중국산이라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도 박태성 무역투자실장이 나서 “한국의 수출통제 시스템은 세계적 수준”이라며 “일본은 한국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를 폄훼하는 시도를 중단할 것을 다시 한번 엄중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들은 FNN 보도 내용을 답습하면서 한국 정부의 전략물자 통제 부실을 문제삼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관련 내용을 전하면서 “한국으로부터 수출된 제품이 중동 등을 거쳐 북한 등에 수출된 사실이 판명되면 일본뿐 아니라 서구도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NHK도 “한국 정부는 전략물자 관리제도 아래 적절하게 적발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자료라고 하지만,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 강화 조치의 배경에 무역관리체제의 불충분이 있는 것을 들면서 안전보장상의 필요한 조치라고 밝히고 있어 향후 논의가 될 것도 예상된다”라고 전했다.
뉴스·정보 등을 가볍게 다루는 TV ‘와이드쇼’ 프로그램들도 이 내용을 반복해서 다뤘다. 특히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암살할 때 사용된 신경제 VX 원료가 말레이시아 등에 수출된 내역이 나왔다면서 당시 화면을 내보냈다. TBS 방송 ‘히루나비!’에 나온 서울특파원 출신 해설자는 “브로커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신문·방송뉴스 → 와이드쇼 → 주간지 등 잡지’라는 순서를 따라 사태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전날과 똑같았다. 노가미 고타로(野上浩太郞) 관방부 부(副)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산케이신문 기자가 이번 자료를 거론하면서 일본 정부의 의견을 묻자 “보도는 알고 있지만 개별 사례에 답하는 것은 사안의 성질상 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운용 재검토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인정받고 있는 안보를 위한 수출관리제도의 적절한 운용”이라며 “자유무역 원칙에 위반되는 게 아니고 WTO 위반이라는 지적도 전혀 맞지 않다”고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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