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 소재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1일 발표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8개월여 만에 사실상 보복 조치에 나선 것으로, 한·일 갈등이 새 국면에 들어갔다. |관련기사 2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오는 4일부터 TV·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세정에 사용하는 리지스트와 에칭가스(고순도불화 수소)에 관한 포괄적 수출허가제도에서 한국을 제외한다고 밝혔다. 경제산업성은 “한·일 간 신뢰관계가 현저히 훼손됐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제도 운용을 엄격히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이유로 수출 규제 강화라는 보복 조치를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품목의 수출 절차를 간소화하는 우대 대상에서 제외되면 개별적으로 90일 정도 걸리는 일본 당국의 심사·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실상 금수 조치인 셈이다. 3개 품목은 세계 전체 생산량의 70~90%를 일본이 차지하고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일본 언론은 예상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또 군사분야에 전용될 수 있는 첨단재료 등에 대한 수출 허가신청이 면제되는 ‘화이트(백색) 국가’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시행령 개정 작업에도 들어갔다. 각계 의견을 수렴해 다음달 1일부터 새 제도를 운용할 예정이다. 현재 일본 정부가 지정한 백색 국가는 미국·영국 등 27개국으로, 한국은 2004년 지정됐다. 한국이 제외될 경우 일본 업체가 해당 품목을 한국에 수출할 때 건별로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본 언론들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놓고 일본 정부가 한국에 해결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사태가 진전하지 않자 강경 조치를 단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교와 무역 문제를 연계한 이번 대응은 논란이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9일 폐막한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의장국으로 ‘자유롭고 공정하며 무차별적인 무역’을 담은 공동성명 채택에 주력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조치가 일본이 내건 자유무역에 역행한다면서 “통상 규칙을 자의적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량적인 제도 운용으로 안정적 조달이 예측 불가능해진다면 반도체 소재 등에서 탈(脫)일본화가 진행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이번 조치를 통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한국을 ‘희생양’ 삼아 보수적 국내 여론을 부추기고 정권 기반을 다지려한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오후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이번 조치에 대해 항의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정부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들과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후 열린 수출상황점검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수출제한 조치는 우리나라 대법원 판결을 이유로 한 경제보복 조치이자,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는 조치”라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포함해 필요한 대응조치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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