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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한일 관계

“70여년 한을 어떻게”...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도쿄서 호소

  “하루 밥 한 끼로는 배가 고파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마시다가 반장한테 ‘도둑이냐’고 발로 차이곤 했어요. 73년이 지나도록 일본은 사죄 한 마디 없는데 눈물로 보내온 이 한을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27일 오전 고층빌딩이 밀집한 도쿄 지요다구 마루노우치의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 양금덕 할머니(89)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양 할머니와 유가족 2명 등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와 이들을 지원하는 한·일 시민모임 회원 등 40여명은 이날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측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기 위해 주주총회가 열린 미쓰비시중공업을 찾았다.
 전남 나주에 살던 양 할머니는 13세던 1944년 5월 ‘중학교도 보내주고, 돈도 번다’는 말에 속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근로정신대에 동원됐다. 고향으로 돌아간 이듬해 10월까지 비행기 페인트칠 등을 했다. 하루 8시간 이상 서서 일했지만 월급은커녕 식사조차 배불리 할 수 없었다. “한국인을 동물 취급하듯이 했다”고 양 할머니는 말했다. 당시 가혹한 노동으로 지금도 오른손을 잘 못 쓰고, 눈도 불편하다고 했다.
 2018년 11월 한국 대법원은 양 할머니 등이 제기한 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에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지만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측은 “국제법 위반”이라면서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양 할머니는 “이대로 내가 눈물을 흘리며 생을 마감해야 하겠나”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몇 명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일이 다정하게 지내기 위해서도 아베 신조 총리가 잘못했다고 뉘우치고 사죄하길 바란다”고 몇 차례나 말했다. 소송에 참가한 원고 5명 가운데 2명은 별세하고, 2명은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시민모임 측은 “양 할머니에게 이번이 마지막 주총이 될 지 모르기 때문에 직접 왔다”고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피해자들은 시간이 없다” “미쓰비시중공업은 판결을 이행하라” 등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같은 구호를 외쳤다.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이국언 공동대표는 “문제는 사법부의 결정을 마음껏 흔들 수 있다는 일본 정부에 있다”면서 “미쓰비시 측이 자체 판단을 하지 않도록 일본 정부가 압력을 넣고 있다”고 했다. 미쓰비시 측은 이날 주총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면서 “일본 정부와 연락하면서 적절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집회 장소에서 1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일본 우익 수 명이 “징용공 판결은 엉터리” 등 손팻말을 들고 항의 집회를 했다. 일부는 “조센징(한국인을 멸시해 부르는 말) 어디 있나”라고 한국 측 집회에 접근하려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집회 내내 ‘한·일 단교’ 플래카드를 내건 우익 선전차가 도로를 돌면서 확성기로 “한국으로 돌아가라” 등의 말을 반복했다.
 원고 측 대리인인 이상갑 변호사는 “일본 대법원도 속이거나 강제로 노동을 시킨 것은 불법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한·일 양국이 이런 강제노동에 대핸 공동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면서 “지나치게 금전이나 배상으로 문제를 국한하는 것은 아쉽다”라고 말했다. 앞서 대리인단은 지난 21일 미쓰비시 측에 내달 15일까지 포괄적 해결을 위한 협의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경우 압류 자산의 현금화 등 후속 절차를 밟겠다고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