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민영방송이 출연자의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를 편집 없이 그대로 방송해 파문이 일고 있다.
18일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방송된 간사이TV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가슴 가득 서밋!>에서 작가 이와이 시마코(岩井志麻子)가 “(한국인은) 손목 긋는 추녀”라고 한 발언이 그대로 방송됐다. 한국인을 자해를 하는 여성에 빗댄 것이다.
문제의 발언은 “일왕이 사과하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다”는 취지로 말한 문희상 국회의장이 새 일왕의 즉위를 축하하는 축전을 보낸 사실을 두고 출연자들끼리 의견을 교환하는 가운데 나왔다. 진행자가 “이와이씨는 남편이 한국인이라는데 한국인 기질을 잘 알고 있나”라고 물었다. 이에 이와이는 “지난 번에도 말했지만, 어쨌든 ‘손목 긋는 추녀’ 같은 거다. ‘손목 긋는 추녀’로 생각하면 대체로 정리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스튜디오 내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와이는 더 나아가 “(한국인은) ‘오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니까 죽으면 너 때문’, 중국이나 북한은 ‘죽든지’라고 말하지만 일본은 ‘그런 말 하지마, 너를 좋아하니까’…”라고 말했다. 이 발언의 마지막 부분은 효과음으로 지워졌다.
이번 방송은 생방송이 아닌 녹화 방송이었다. 이와이는 프로그램 모두에 “오늘은 뭐든 말해도 좋은 날이다. 녹화니까”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은 문제 발언을 편집하지 않았다.
간사이TV는 오사카(大阪)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關西)권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 보수·우익 논조인 산케이신문과 후지TV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이번 일을 두고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인종 차별과 여성 멸시를 부추기는 발언이라는 비판들이 나오고 있다. 재일코리안의 인권 문제 등에 정통한 작가 와카이치 고지(若一光司)는 마이니치신문에 “녹화·편집된 프로그램에서 이런 내용이 나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이번 발언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추녀’라고 불리면서 상처받은 사람들이나 자해를 반복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중·삼중의 차별과 모욕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게야마 다카히코(影山貴彦) 도지샤여대 교수도 “차별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편집 않고 그대로 방송한 것은 극히 유감”이라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니까 다소 과격한 발언은 허용된다라는 문제가 아니라 인권에 대한 전사회적인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문이 커지자 간사이TV는 18일 “다양한 시청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심정을 다치게 하는 표현이었다.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고 사죄했다.
이번 사건은 최근 일본 TV 업계 전체가 인권에 대한 배려를 강하게 요구받고 있는 가운데 일어났다.
앞서 도쿄 지역 민방인 도쿄 MX TV의 <뉴스 여자>는 2017년 1월 방송에서 오키나와(沖繩)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이들을 “테러리스트 같다”거나 “일당을 받고 고용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본 방송윤리·프로그램 향상기구(BPO)는 지난해 3월 진실성이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나타내 관계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했다. 지난달 10일에는 또다른 간사이지역 민방인 요미우리TV가 뉴스 프로그램 <간사이 정보넷 ten>의 한 코너에서 일반인에게 “성별은 어느 쪽”이냐면서 보험증의 성별난을 확인하거나 “가슴은 있냐”고 묻는 내용을 방송했다가 비판이 빗발치자 보도국장 등이 사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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