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부라부라'(어슬렁어슬렁)의 범위를 넓혀 기치조지(吉祥寺)에 갔다.
기치조지는 도쿄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 1~2순위로 꼽는 곳이다. 재즈 카페나 라이브하우스, 작은 영화관 등이 들어서 있는 등 예술의 거리로도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기치조지만이 살고 싶은 거리입니까>(아래 사진)라는 만화가 있을 정도다. 이 만화는 2016년 동명의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다. 기치조지에 있는 부동산을 찾아온 고객들의 사정을 듣고, 그들에게 어울리는 다른 동네의 물건들을 찾아주는 내용이다.
기치조지는 7년 전에도 갔는데, 그때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애니메이션 작품 캐릭터 등을 전시하고 있는 '지브리미술관'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기치조지를 찾은 건 순전히 <구구는 고양이다> 때문이다. <구구는 고양이다>는 오시마 유미코(大島弓子)의 만화인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유명한 이누도 잇신(犬童一心) 감독이 2008년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었고, 2014년에는 5부작 드라마로 제작했다.
드라마 <구구는 고양이다>를 먼저 접했다. 이제는 '미중년'이 됐지만, 1990년대 초반 누드집 <산타페>로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탔던 미야자와 리에(宮沢りえ)가 주인공 만화가 역할을 맡았다.
드라마는 제목 그대로 만화가 고지마 아사코(小島麻子)가 고양이 '구구'('good good'이라는 뜻이다)와 지낸 나날들을 사랑스럽게 묘사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구구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얘기만으로도 공감을 자아낸다.
이 작품의 무대가 바로 기치조지다. 특히 드라마에 줄곧 등장하는 곳이 이노카시라온시공원(井の頭恩賜公園)이다. 주인공이 구구를 처음 만난 곳도 이곳이고, 어느날 밤 묘한 느낌에 이끌려 또다른 아기고양이들을 찾아낸 곳도 이곳이다. 아니,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이나 만남이 이 공원에서 이뤄진다. 사람들이 산책을 나오고, 태극권을 연습하고, 자신이 만든 장신구나 그림을 팔고, 악기를 연주하고.... 카메라가 드라마 내내 이노카시라공원 주변을 비추다보니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노카시라공원은 무사시노(武蔵野)시와 미타카(三鷹)시에 걸쳐 있다. 벚꽃 명소로도 유명하다. 1917년 개원했으니 올해로 100주년이다. 안 그래도 5월1일부터 개원 100주년 기념 행사를 한다는 포스터가 공원 곳곳에 붙어 있었다.
이노카시라공원은 한가운데 이노카시라이케라는 커다란 연못을 중심으로, 주변에 산책로와 녹지, 잡목림이 펼쳐져 있다. 테니스장이나 운동장 등 운동시설도 마련돼 있다. 이노카시라자연문화원과 지브리미술관도 자리잡고 있다.
이노카시라공원에는 유독 벤치가 많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 <구구는 고양이다>에서도 등장인물들이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들이 유독 많이 나온다. 주인공이 구구를 데리고 있던 노숙자를 만난 것도 벤치였다. 여기쯤일까. 주인공이 학창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를 수십년만에 만났던 카페가 저곳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공원을 크게 한바퀴 돌았다. 지브리미술관으로 향했다. 옥상정원 위에 <천공의 섬 라퓨타>의 로봇이 애니메이션과 똑같이 서 있던 곳. 7년 전 모습과 달라진 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매표소에 가서야 깨달았다.
지브리미술관에서 다시 공원을 통과해 기치조지역으로 향하는 길. 이노카시라자연문화원이 보였다. 동물원이 있는데, 이곳에 있던 코끼리 '하나코'는 꽤 유명했다. 지난해 69세의 나이로 숨지면서 애도의 물결이 일기도 했다.
다시 기치조지역으로 돌아와 북쪽 출구 쪽으로 향했다. 드라마에도 나온 선로드상점가를 한 번 봐두고 싶었다. 사람들이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그리고 꼬치집과 바들이 즐비한 하모니카 요코초도. 오후 4시가 지났을 뿐인데 가게에는 손님들이 꽤 들어차 있었다.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쉽게 포기. 아직은 가게에 혼자 들어가 주문을 하고, 술을 한 잔 하는 게 익숙지 않다.
ⓒ혼다프로모션BAUS
'도쿄 통신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쿄 부라부라]즐거움은 나중에 즐기다...고라쿠엔(後樂園) (0) | 2017.05.22 |
---|---|
[도쿄 부라부라]일본 3대 마쓰리라는 간다 마쓰리를 가보다 (0) | 2017.05.15 |
[도쿄 부라부라]와세다대 주변... 유서 깊은 찻집, 박물관, 그리고 에밀레종이... (1) | 2017.04.24 |
나의 <요통 탐험기>... 도쿄까지 오다 (0) | 2017.04.16 |
벚꽃이 피는 계절에 돌아오길 (1) | 2017.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