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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통신

나의 <요통 탐험기>... 도쿄까지 오다

 “아,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요통 탐험가>를 읽었던 게 아마 4년 전 쯤일 거다. ‘오지 탐험 작가’인 다카노 히데유키(高野秀行)가 운수가 사납다는 ‘액년’인 42세에 빠져든 ‘요통 지옥’을 탈출하려는 요절복통 투병기다. 다카노는 요통을 정복하기 위해 ‘야매’ 침술원에서부터 동물병원까지를 전전하면서 악전고투하는데 그 모습이 꽤 코믹하다. 

 오늘 동네 정형외과에서 ‘리하비리’(rehabilitation) 치료를 받으면서 퍼뜩 그 책이 떠올랐다. 아, 나도 ‘요통의 밀림’을 헤매다가 여기까지 왔구나. 

 한국에 있을 때부터 아팠던 허리가 일본에서 심해진 듯해서 참다 못해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기무 사마”.  스피커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욘 사마’만 있는 게 아니구만. 

 의사에게 눈인사를 한 뒤 다짜고짜 종이부터 내밀었다. 말이 안 통할 경우를 대비해 인터넷을 찾아가며서 일본어로 쓴 것이다. 

 “허리에 통증이 있다. 심하다. 지쿠지쿠(쿡쿡). 추간판 헤르니아(디스크). 4·5번이 돌출. 시티(CT) 촬영. 왼쪽 다리가 저린다.”

 지난 번 한국에서 종합검진을 받았을 때 허리 디스크 돌출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지금 허리가 쑤시고, 왼쪽 다리가 좀 저린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었다. 

 의사는 알아들었는지 침대에 누우라고 하더니 허리와 다리를 좀 만져보고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더니 엑스레이를 찍자고 했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다른 건 괜찮은데 5번 디스크 사이가 좁다고 설명. 

 그러더니 “약을 먹고 리하비리를 합시다. 3주 정도 하면 나을 거에요.”

 (여기서 주의! 내가 제대로 들었는지 모르겠다. 한국 의사들은 결코 이런 식으로 확답은 하지 않았는데. 혹시 3주 후면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가 아닌지.)

 아무튼 간호사의 안내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위의 ‘리하비리 장소’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자 눈 앞에는 노인분들이 가득 대기하고 있었다. 아, 여기가 ‘노령사회’ 일본의 실상을 볼 수 있는 곳인가? 내 옆자리로 돌아온 한 일본인 할머니는 전자체온계 비슷한 걸로 팔에 계속 누르고 있다. 도대체 뭘까.  

 리하비리실 쪽에는 안마의자 같은 데 앉아있는 노인분들이 보였다. 오호라, 일본은 병원에서 안마를 해주는구만. 

 잠시 기다리다가 커튼이 쳐진 곳 뒤로 가서 물리 치료를 받았다. 전기 자극을 10분 정도 주는 것은 한국이랑 똑같다. 

 그 다음에는 아까 노인분들이 앉아 있던 ‘안마의자’. 알고 보니 이게 견인 치료를 해주는 특수기구라고. 내 ‘다년간의 경험’에 따르면 한국은 침상 같은 데서 누워서 견인치료를 하는데 희한하네. 의자에 앉으니 의자가 뒤로 젖혀지면서, 어깻죽지를 당겨올리고 다리쪽은 끌어내리는 식으로 견인치료를 한다. 

 하늘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몽롱한 기분에 젖는 사이 나의 <요통 탐험기>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수위원회 시절부터였으니 내 투병기도 꽤 오래됐다. 그 해가 나에게는 액년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엔 추워서 다리가 저리는 줄 알았는데 한의원을 갔더니  허리에 문제가 있는 것이란다. 그래도 침을 좀 맞고, 동네 근처 정형외과를 가서 물리치료랑 약을 먹고 했더니 괜찮아졌다. 

 요통이 다시 도진 건 지난해 봄이다. 큰 맘 먹고 자전거를 샀다. 하루를 쉬게 된 금요일. 한강 자전거 길 쪽으로 나가 하남 쪽으로 향했다. 어, 생각보다 힘들지 않네 싶었다. 바람도 좋고, 기분도 좋고, 하는 사이 양평까지 갔다. 문제는 그 다음. 돌아오는 길이 고역이었다. 저질 체력은 이미 바닥이 났고 거의 자전거를 끌다시피해서 집으로. 

 그 다음날 허리 쪽이 욱신거렸다. 아내가 내가 서 있는 모습을 보더니 “좀비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허리쪽이 뒤틀린 것처럼 보였다. 한의원에 갔더니 ‘척추 측만증’. 이후 뒤틀린 허리는 돌아왔지만 괜찮다 싶으면 허리가 아프고, 그래서 한의원 가서 치료 받고, 또 좀 괜찮아졌다 싶으면 허리가 아프고 하는 ‘요통의 뫼비우스 고리’가 반복됐다. 

 큰 맘 먹고 종합병원에 갔지만 뾰족한 해법이 없었다. 마지막에 허리주사까지 맞았는데 효과는 그리 없었다. 허리 강화 운동을 하라는데 게을리 해서 그런지 이것도 효과가 없었다. 허리에 좋다는 방석까지 샀지만 어느새 익숙해지니까 그냥 방석과 마찬가지. 

 결국 '요통의 뫼비우스 고리'를 끊지 못한 채 일본행. 비행기 좌석에 꼼짝없이 앉아있을 때부터 이상했다. 새로운  집에는 가구고 뭐고 아무 것도 없고, 사무실에선 계속 앉아 있으니 요통이 도지는 건 당연. 

  그래서 어떻게 할까 싶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한의원이 거의 없고. 접골원이니 정골원이니 하는 곳은 있는데 여긴 또 미심쩍고. 종합병원을 가자니 너무 복잡하고 시간도 안 맞고. 결국 오늘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고, 안마의자 같은 데 앉아서 나의 <요통탐험기>를 떠올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래도 요통 치료 삼아 주말마다 걷다보니 록본기, 메구로, 지도리가후치, 메이지신궁까지 섭렵하게 됐다. 효과는 있는지 모르지만, 무릎부터 나가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낯선 곳을 걷고 있노라면 기분 하나는 좋아진다.   

 과연 3주 후면 의사의 말(?)처럼 요통 밀림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엎드려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도 오른쪽 허리가 욱신거린다. 다카노처럼 '평생을 요통과 함께'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