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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통신

[도쿄 부라부라]와세다대 주변... 유서 깊은 찻집, 박물관, 그리고 에밀레종이...

도쿄 긴자를 부라부라(어슬렁어슬렁)하는 것을 빗대 '긴부라'라는 말이 있다는데, 허리 운동 삼아 도쿄 이곳저곳을 부라부라거리게 됐다. 

이번에는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와세다(早稲田) 대학. 때마침 도쿄신문에 와세다 주변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생각해보니 와세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한국의 연세대와 비슷한 이미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교 정도. 

와세다대는 제8대와 17대 일본 총리를 역임한 오쿠마 시게노부(信)가 세운 도쿄 전문학교에서 출발했다. 1882년 건립됐으니 꽤 역사가 길다. 대학 내에는 유서 깊은 건물들도 적지 않다. 방대한 자료를 소장한 박물관도 있는데, 무엇보다 공짜다. 

옛날이니 지금이나, 세계 어디를 가나, 대학가 근처에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대학생들을 위한 싸고 맛있는 음식점이나 찻집들이 많이 남아 있다. 와세다대 주변도 마찬가지. 다른 대학가처럼 패스트푸드나 커피 체인점에 점령당했지만, 한때 대학생들이 모여 정치와 사회를 논하고, 때로는 빈둥거리면서 시간을 때우던 찻집도 몇 군데 남아 있다.

일본에 와서 맞는 주말이 늘 그렇듯 날씨는 흐림. 그래도 쌀쌀한 기운은 완전히 사라져서 걷기에 딱 좋은 날이다. 그래서 와세다대 주변을 부라부라.  

와세다길 근처에 있는 교류 스페이스(?) 아카네. 300엔짜리 소주. 시인이나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수수께끼의 바'라는데, 낮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와세다 남문길을 따라 와세다대 쪽으로 가다보면 보이는 커피전문점 '푸란탄(쁘렝땅)'. 1950년 문을 연 이래 옛날 그대로의 찻집 스타일을 계속 지켜오고 있다고 한다. 

1905년에 창업한 다카타보쿠샤(高田牧舎). 건물은 새로 지어졌다. 

와세다대 정문 맞은편에 가까운 ’사나에(早苗)’. 1층은 찻집으로 밤에는 바로 운영된다. 2층은 마작을 할 수 있는 곳인데 일본의 전통 만담인 라쿠고(落語) 공연을 하기도 한다고. 지난해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 

와세다대 정문 맞은편에는 와세다의 상징인 오쿠마(大隈)기념강당이 서 있다. 창립자인 오쿠마 시게노부를 기리기 위해 1927년 건립됐다. 로마네스크 양식에 고딕 양식을 가미한 근대 절충주의의 대표적 건물로 꼽힌다고. 

강당 뒤쪽으로는 오쿠마정원이 있어서 들어가봤다. 그랬더니 낯익은 범종이 걸려 있는 누각이 보였다. 

신라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축소한 종으로, 와세다대 건립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1983년 한국 동문들이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오쿠마정원에는 휴일을 맞아 가족 나들이객들이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래 사진은 오쿠마정원에 면해 있는 리가로얄호텔 도쿄. 


본격적으로 대학 구내로 들어가보았다. 목적지는 와세다대가 자랑하는 박물관 두 곳. 관람은 무료다.

 아이즈야이치(会津八一)기념박물관. 동양미술사가이자 시인, 서예가였던 아이즈 야이치가 수집한 동양 미술 자료를 중심으로 고고학 발굴 자료, 근현대 미술, 민속 자료 등이 소장돼 있다. 이날 둘러본 전시물에는 청동거울이나 기마용 등 부장품이 많았다. 

박물관 자체도 1925년 도서관으로 건축된 것으로 와세다대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철근콘크리트 건물이다. 

1층 홀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정면에는 직경이 4.5미터나 되는 대작 '메이안'(明暗, 두번째 사진)이 걸려있다. 해가 검은 구름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그렸다.  

쓰보우치박사기념 연극박물관. 메이지에서 쇼와시대에 걸쳐 연극, 문학, 무용, 아동극 등 다방면에서 업적을 남긴 쓰보우치 쇼요(坪内逍遥, 1859~1935)가 번역한 세익스피어 전집 전 40권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28년 설립됐다. 아시아 유일의 연극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 건물은 세익스피어가 활동했던 엘리자베스 시대의 '포춘극장'을 모델로 설계됐다고 한다. 건물 자체가 세익스피어 연극을 공연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정면에는 라틴어로 'Totus Mudus Agit Historionem(이 세상은 모두 무대)'라는 세익스피어 연극의 대사가 새겨져 있다. 

3층으로 된 박물관은 100만점에 이르는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전시실에는 가부키나 조루리 등 일본의 전통극에서부터 일본의 여성극단 다카라즈카의 의상, 한국의 수영야류의 탈, 인도네시아의 그림자연극, 세익스피어 관련 자료 등 볼거리들이 적지 않다. 

사진 촬영은 금지. 실내 바닥과 계단이 모두 목조로 돼 있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서 혼났다.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고 인터넷을 주로 이용하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 와세다대 주변에 있던 고서점들은 지난 10년 사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현재는 17곳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한다. 
와세다대에서 나와 와세다거리를 따라 다카다바바(高田馬場)역 쪽으로 걷다보면 '虹(니지)' 서점이 있다. 4분의 1 정도를 오키나와 관련 서적들로 채우고 있는 근현대사 분야에 특화된 고서점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