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런 사고 뉴스를 전해야 합니다….”
지난 4일 밤 일본 민방 TBS 보도 프로그램 ‘뉴스23’의 메인 캐스터는 심란한 표정으로 뉴스 한 꼭지를 읽었다. 이날 저녁 후쿠오카(福岡)시에서 80대 남성이 역주행 운전을 해 2명이 사망했다는 뉴스였다. 3일 오사카(大阪)시에서 80대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가속기를 잘못 밟아 보행자 4명이 다친 소식을 전한 바로 다음날 비슷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노인대국’ 일본에서 최근 고령 운전자들의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고령자의 운전면허 반납을 독려하는 등 대책을 서두르고 있지만, 잇따른 고령자 운전 사고에 여론의 우려는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5일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5분쯤 후쿠오카시 사와라(早良)구 교차로에서 81세 남성이 운전하던 승용차가 다른 차량과 잇따라 부딪히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승용차는 모두 5대의 차량과 연쇄 충돌했으며, 이 중 2대는 인도에 진입했다. 이로 인해 사고를 낸 남성과 동승한 아내(76)가 숨지고, 인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사람 등 7명이 다쳤다. 경찰에 따르면 이 남성의 차량은 교차로 600m 앞에서 다른 차량과 충돌한 뒤 반대편 차선에 진입해 역주행으로 교차로에 들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3일 오후 6시30분쯤에는 오사카시 고노하나(此花)구에서 80세 남성이 운전하던 승용차가 주차장에서 인도를 향해 급발진해 모녀 등 4명이 다쳤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 남성은 “브레이크를 밟으려다 가속기를 잘못 밟았다”고 진술했다.
앞서 지난달 19일 도쿄 이케부쿠로(池袋)에선 87세 남성이 운전하던 승용차가 신호등이 빨간불인데도 질주해 횡단보도를 건너는 행인들을 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여성(31)과 3세 아이 등 모녀가 숨지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특히 이 남성은 지난 18일 경찰에 출석할 때 주위의 부축 없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해 논란을 일으켰다.
일본에선 이처럼 신체 및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고가 줄을 잇고 있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사망자가 발생한 교통사고 중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낸 사고의 비율은 12.9%로 2006년 7.4%에서 크게 늘었다. 이는 고령화의 진전으로 고령자 운전자의 비중이 커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본에서 75세 이상 운전면허 보유자의 수는 2007년 283만명에서 2017년 540만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노인대국’ 일본은 지난해 기준 총인구 1억2653만명 중 65세 이상이 28%(3547만명)에 달한다. 4명 중 1명이 고령자인 셈이다.
고령 운전자 사고가 잇따르자 일본 정부는 지난 2017년 3월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75세 이상 운전자에 대한 인지기능 검사를 강화했다. 검사에서 ‘치매 우려’ 판정을 받으면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하고, ‘치매’로 진단받으면 면허 취소 혹은 정지를 받는다. 이 절차에 따라 작년 한해 5만4786명이 ‘치매 우려’ 판정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또 고령자가 스스로 면허를 반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고령 운전자가 자동 브레이크 기능 등을 갖춘 ‘안전운전 지원 차량’만 운전할 수 있게 하거나 운전 지역과 시간을 제한하는 운전면허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당장 이동수단이 없어지는 고령자들로선 운전을 그만두는 걸 주저할 수밖에 없다. 최근 내각부 설문조사에 따르면 80세 이상의 26.4%가 외출시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런 경향은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뚜렷하다.
이 때문에 고령 운전자에게만 책임을 돌릴 게 아니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달 21일 관계 부처에 자동 브레이크 등 새로운 안전 기술의 개발·보급, 면허반납 고령자에 대한 이동수단 확보 등의 대책 마련을 지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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