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 오전 이마무라 마사히로(今村雅弘) 부흥상(사진)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다. 이마무라 부흥상이 전날 저녁 2011년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일어난 동일본대지진을 두고 “도호쿠에서, 저쪽이었기 때문에 다행이다”라고 말했다가 비판이 쇄도하자 서둘러 조치를 취한 것이다. 잇따르는 각료들의 설화가 정권에 타격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지만,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가 발생한 도호쿠지방을 바라보는 속내가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진 도호쿠여서 다행”... 아베, 부흥상 경질에 사과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총리 관저에서 이마무라 부흥상이 낸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동일본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은 아베 내각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피해지의 모든 이들의 마음에 다가가면서 부흥에 전력을 다하는 게 내각의 기본 방침”이라면서 다시 한번 사과했다. 그는 “이마무라 부흥상의 언동은 극히 부적절한 것으로, 부흥상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피해자의 신뢰를 잃는 언동”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이마무라 부흥상은 전날 저녁 도쿄 도내에서 열린 자민당 내 파벌 ‘니카이(二階)파’의 파티에서 동일본대지진의 피해와 관련해 “아직 도호쿠에서, 저쪽이었기 때문에 다행이다”면서 “(대지진이) 수도권에서 가까웠더라면 막대한 피해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흥청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도호쿠지방의 부흥을 목적으로 설치됐다. 이런 부흥청의 수장이 동일본대지진 피해자의 가슴에 못을 박는 망언을 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후임 부흥상으로 자민당 소속 요시노 마사요시(吉野正芳) 중의원 의원을 임명했다. 마사요시 의원은 후쿠시마가 지역구로, 현재 중의원 재해부흥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 도호쿠 지방의 성난 민심을 달래 이번 사태를 빨리 수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과 기대를 외면하는 정치인들의 속내가 또다시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일본대지진이나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관련한 정치인들의 망언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끊이지 않는 망언들
이번에 사임한 이마무라 부흥상은 지난 4일에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스스로 고향을 떠난 피난민의 귀향 여부에 대해 “그것은 본인 책임”이라고 말했다. 국가 책임은 없냐는 질문에 “재판이든 뭐든 하면 될 거 아니냐”고 했다. 그는 기자가 끈질기게 국가 책임을 묻자 “당신, 나가라. 다시 오지 마라” “시끄럽다”면서 핏대를 올리기도 했다.
앞서 2014년 6월에는 자민당 소속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환경상이 쿠시마 원전 사고로 생긴 오염토의 중간저장 시설 건설에 관해 “최후는 가격이 얼마나 되느냐일 것”이라고 말했다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발언을 철회하고 사죄했다.
지난달 8일에는 차관급인 무타이 슌스케(務台俊介) 내각부정무관 겸 부흥정무관이 자신 덕분에 “장화업계가 상당한 이득을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사임했다. 그는 지난해 9월 태풍 피해를 입은 도호쿠지방의 이와테(岩手)현을 시찰할 때 장화를 준비하지 않아 수행원의 등에 업혀 물웅덩이를 건너 비난을 받았는데, 이를 소재로 농담을 한 것이다.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 당시 민주당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마쓰모토 류(松本龍) 부흥상은 2011년 7월 이와테현을 방문해 “지혜를 내지 않는 놈은 도와주지 않는다”고 등 막말을 했다가 임명 7일만에 물러났고, 같은 해 9월 하치로 요시노(鉢呂吉雄) 경제산업상은 후쿠시마 원전 피해지역을 ‘죽음의 거리’라고 불러 논란 끝에 사임했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배신하는 정치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은 6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인해 1만8000명을 넘는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생겼다. 지금도 약 7만명이 가설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피난살이로 인한 사망자수도 2000명을 넘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다른 지역으로 피난한 학생들에 대해 “후쿠시마로 돌아가라” “세균”이라고 부르면서 집단 괴롭힘을 가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확인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도호쿠의 부흥 없이 일본의 재생은 없다’를 기본 방침으로 부흥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흥청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올해 2조6896억엔(27조1600억)의 특별회계를 편성해 부흥 작업에 투여할 예정이다. 부흥청에선 후쿠시마 원전사고 발생 지역에서 떨어진 후쿠시마현 내 다른 지역의 방사선량이 전 세계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높지 않다고 강조하는 등 ‘풍평(風評) 피해(풍문으로 입는 피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홍보 활동 등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학적 근거’로 판단해 달라는 얘기들도 하고 있다.
하지만 부흥청 수장의 망언으로 이 같은 노력은 빛이 바랬다.
앞서 아베 총리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유치 과정에서 “후쿠시마는 거의 수습이 됐다”고 했다.
후쿠시마의 현실을 최대한 숨기고 싶은 게 정치권의 솔직한 심정일 지도 모른다. 피해자들의 고통과 기대를 외면하는 정치가들의 잇따른 망언은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인 분위기에도 영향을 준다. 도호쿠지방의 한 주민은 아사히신문에 “잘려 버려진다고 해야 할까, 차별당했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도호쿠의 부흥을 향한 여정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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