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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울고 싶은 아베의 뺨 때려준 '한반도 위기론'

‘미국, 군사행동 망설이지 않아’ ‘일본, 미 군사행동시 사전 협의 요구’ ‘미·북 충돌 대비 본격화’.

최근 며칠 간 일본 언론들이 쏟아내고 있는 ‘한반도 위기론’ 기사의 제목들만 보면 당장 한반도에서 군사 충돌이 일어날 것 같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일본 측의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지만 석연치 않은 대목이 적지 않다. ‘한반도 위기론’에 편승해 일본 무장론의 명분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요미우리신문은 13일 미국이 대북 군사행동에 나설 경우 주일 미군기지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일본과 사전협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미국이 북한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고, 일본이 그럴 경우 사전 협의를 요청했다’는 보도를 부인한 바로 다음날이다. 앞선 보도들과 마찬가지로 요미우리는 익명의 ‘정부 고위관계자’를 인용했다. 일본 정부가 이중 플레이를 하는 양상이다. 

이런 이중 플레이는 11일 외무성의 주의령에도 드러난다. “안전에 바로 영향이 있는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한국에 머물고 있거나 방문할 계획이 있는 일본인에게 주의령을 내린 것이다. 정작 미국 정부는 아무 지침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과도 대조된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개헌을 추진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북한 위협론은 무장을 강화할 명분을 키울 기회다. 집권 자민당은 자위대 강화의 근거로 북한 위협론을 거론해왔다. 아베 정권이 ‘테러 등 준비죄(공모죄)’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게다가 아베는 부인 아키에(昭惠)여사와 관련된 우익 학교 스캔들에 휩싸여 있다. 일각에선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대사의 한국 복귀와 한일 위안부 합의, 한국 대선 등을 둘러싼 일본 측의 불편한 속내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과의 협력’ 운운하지만 결국 우방의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셈이다. 아베 총리는 “지구의(地球儀)를 내려다보는 외교”를 내세웠다. 하지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북 강경책만 편든다는 지적이 많다. 도쿄신문은 13일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비군사적 해결을 호소하는 선두에 선다면 지구의를 내려다보는 외교도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아베는 이날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북한이 사린가스를 미사일 탄두에 장착해 발사할 능력을 이미 갖췄을 수 있다”면서 강경 대응을 주장했다. 그의 머리 속엔 ‘비군사적 해결’ 따위는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