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일본 정치

일본 썰렁한 '옥새 승계식'에 "여왕은 안 되나"

 지난 1일 도쿄 고쿄(皇居)에서 열린 ‘검새(劍璽) 등 승계의식’. 일왕가의 상징인 ‘삼종신기(三種神器)’ 등을 물려받는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59) 옆에는 단 두 사람의 왕족만 배석했다. 왕위 계승 자격을 갖춘 성인만 배석할 수 있기 때문에 동생 후미히토(文仁·53)와 휠체어에 앉은 작은 아버지 마사히토(正仁·83)만 자리한 것이다. 왕위 계승 후보는 후미히토의 아들 히사히토(悠仁·12)까지 포함해 단 3명. 일왕가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현재 일본 왕실 구성원은 18명이다.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하면서 왕위 계승 후보는 후미히토, 히사히토, 마사히토 순이 됐다. 일본 왕실전범은 아버지가 왕족인 남성(남계남자·男系男子)의 왕위 계승만 인정한다. 나루히토 일왕의 딸인 아이코(愛子)는 계승 자격이 없다.
 현 상황이 그대로 이어지면 남자는 히사히토 혼자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히사히토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현재 30대 이하의 왕족 7명 가운데 6명이 미혼 여성이다. 왕실전범에 따르면 여성 왕족이 일반인과 결혼하면 왕실을 떠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왕족의 공무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일본 언론 대부분이 왕위의 안정적 계승을 위한 대책 마련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지금까지 여성 일왕이나 어머니가 왕족인 일왕을 인정하거나 여성 왕족이 결혼한 후에도 왕실에 남을 수 있는 ‘여성 궁가(宮家)’를 신설하는 방안이 논의돼 왔지만, 결론은 매번 뒤로 미뤄졌다.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 純一郞) 총리는 이런 여성여계(女性女系) 일왕을 인정하는 왕실전범 개정안을 제출할 방침이었지만, 그해 2월 후미히토의 부인 기코가 임신을 하면서 단념했다. 2012년 10월 민주당 정권 시절엔 여성 궁가 창설을 검토했지만, 그해 12월 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발족으로 논의가 중단됐다.
 2017년 6월 국회는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의 생전 퇴위 특례법을 통과시킬 때 “안정적인 왕위계승을 확보하기 위한 모든 과제, 여성 궁가 창설 등”을 신속하게 검토하도록 정부에 요구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 의식이 일단락되는 올 가을 이후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제도 개정으로 이어질 지는 불투명하다.
 아베 정권은 남계남자에 의한 왕위 계승이라는 기존 전통을 중시하고 있다. 아베 총리부터 고이즈미 총리 시절 관방장관으로 왕실전범 개정안 제출을 막았다. 민주당 정권 시절엔 “남계로 이어온 왕실의 역사와 전통의 근본원리를 무너뜨릴 위험성이 있다”고 ‘여성 궁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아베 정권의 지지기반인 ‘일본회의’ 등 우익 세력의 반대도 강하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일 기자회견에서 “남계 계승이 옛부터 예외없이 유지되온 무게를 감안해가면서 신중하고 정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신중론을 내비쳤다.
 이런 아베 정권의 입장은 일반 여론과 괴리되는 것이다. 지난 1월 도쿄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왕위 계승을 용인해야 한다’는 의견이 84.4%였다.여성 궁가도 76.2%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한편 영국,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벨기에 등 유럽에선 남녀를 불문하고 첫째가 왕위를 계승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