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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일본 정치

'신성'은 벗었지만 '제국주의' 잔영은 여전

 아키히토 일왕은 125대 ‘덴노(天皇·일왕의 일본식 호칭)’다. 일본 궁내청은 기원전 660~558년 재위한 진무(神武)를 초대 ‘덴노’로 삼고 있지만, 실존 여부는 의심스럽다. 학계에선 대체로 6세기 때 지금의 일왕가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보수·우익들은 일왕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세습군주제라고 자랑하고 있다.
 주로 상징적·종교적 존재였던 일왕이 국가 권력의 중심으로 재등장한 것은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다. 1889년 공포된 대일본제국헌법(메이지헌법) 하에서 “국가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하는 ‘절대군주’로 자리매김됐다. 메이지헌법 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영원히 같은 혈통이 계승)의 덴노가 통치한다’고 규정했다. 일왕을 정점에 둔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에 핵심 역할을 했다.
 일왕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정치적 실권이 없이 ‘권위’만을 가지는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전범 재판을 피한 히로히토 일왕은 1946년 1월1일 ‘인간 선언’으로 스스로 신성(神聖)을 부정했고, 그해 11월 공포된 ‘평화헌법’은 일왕을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이 존재하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제1조)고 규정했다.
 그러나 ‘현인신(現人神·인간의 모습을 한 신)’으로 군림했던 일왕의 잔영은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유럽 왕실에 비해 천황제를 둘러싼 ‘터부’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라 다케시(原武史) 일본방송대 교수는 <헤이세이의 종언>에서 “천황제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자체가 없다”고 했다. 일본인들이 유독 천황제에 대해선 ‘사고 정지’ 상태라는 지적도 있다.
 전전(戰前) 천황제로 돌아가려는 시도들도 줄곧 있었다. 1969년 진무가 즉위한 날을 기리는 건국기념일을, 1979년에는 연호에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원호법을 제정했다. 1999년에는 ‘히노마루’를 국기로, ‘기미가요’를 국가로 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2000년 모리 요시로(森喜朗) 당시 총리는 “일본은 덴노를 중심으로 하는 신의 나라”라고 말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비판론자들은 ‘상징 천황제’가 일왕의 전쟁 책임을 비롯한 천황제의 문제를 애매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일본이 과거 침략행위를 반성하려 하지 않는 것도 천황제 존속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천황제가 헌법에 정해진 법 아래 평등과 모순되는 차별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30일과 내달 1일 도쿄 중심가에서 천황제 반대 집회를 예고하고 있는 ‘오와텐네트워크’는 “천황제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 차별·착취를 흐지부지하게 만드는 최대의 국가장치”라며 “권력자에 속지 않고 항거하는 힘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선 천황제의 주술에서 풀려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츠노미야 겐지(宇都宮健兒) 전 일본변호사협회 회장은 지난 25일 도쿄 도내 강연에서 “국민의 주권자 의식, 주인공 의식이 희박한 것은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