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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트럼프의 입, 유럽을 들쑤시다

ㆍ‘EU·나토 불필요’ 발언에 “분열 부추기는 미 대통령” 유럽 수장들 분노 터뜨려
ㆍ통합 반대 측에선 “환영”

트럼프의 입, 유럽을 들쑤시다

유럽 지도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게 불만과 분노를 터뜨렸다. 트럼프가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추가 이탈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무용론 등 유럽을 지탱하는 축들을 깔아뭉개는 발언을 쏟아낸 게 설마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던 유럽 지도자들의 우려에 불을 붙였다.

BBC, 가디언 등은 16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 유럽 지도자들이 트럼프의 반(反)EU·나토 발언 등을 일제히 반박하고 나섰다고 보도했다. 메르켈은 이날 독일 베를린에서 빌 잉글리시 뉴질랜드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하면서 “유럽인의 운명은 우리 자신의 손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EU의) 27개 회원국이 강고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낙관적으로 함께 일해나가는 것에 앞으로도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랑드도 이날 파리에서 열린 제인 하틀리 미국 대사 환송식에서 “유럽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줄 외부 조언이 필요하지 않다”고 트럼프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또 “유럽은 언제든 (미국과) 협력을 할 자세가 돼 있지만 당연히 우리의 이익과 가치를 먼저 생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유럽 지도자들도 격앙된 반응을 내놓았다.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은 “트럼프의 발언에 경악했다”면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르베르트 뢰트겐 독일 연방하원 외교위원장은 “나토가 쓸모없고 EU가 쪼개져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트럼프가 서방의 단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교장관은 “최선의 대응은 유럽의 결속”이라며 “유럽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통합하고 EU 안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 지도자들이 일제히 날을 세운 이유는 트럼프가 전후 유럽 질서를 형성해온 중심축들을 흔들려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15일 영국 더타임스, 독일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메르켈의 난민 정책을 “재앙”에 비유하고,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잘한 일”이라고 칭찬했다. 아울러 나토는 “너무 옛날에 만들어졌고, 회원국들이 내야 할 돈을 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 외교가의 몇 주간의 관망세는 (미국·유럽의) 범대서양 관계의 주축들과 미국의 가장 친밀한 전통적 동맹(독일)을 폄하하는 트럼프의 직설적 발언에 날아가버렸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의 최근 발언으로 유럽 정치인들이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최초로 유럽 분열을 부추기는 미국 대통령과 대면해야 하는, 결코 바라지 않았던” 상황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EU 내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트럼프의 발언을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이탈리아 분리주의정당 북부동맹 지도자인 마테오 살비니는 트위터에 “나토가 시대에 뒤떨어졌고 이슬람의 테러와 싸울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트럼프와 푸틴의 말에 절대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오성운동의 만리오 디 스테파노는 트위터를 통해 “세계의 변화는 동쪽으로부터 오고 있다. 정체됐던 기존 질서가 모든 면에서 흔들리고 있다. 우리 역시 그런 변화의 일부”라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나토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지라고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