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괜찮았니?”
반 년간의 한국 유학을 마치고 지난 1일 일본에 돌아온 이노마타 슈헤이에게 어머니가 가장 먼저 한 말이라고 한다. “외무성에서 ‘주의’가 나왔다”는 것이다.
앞서 일본 외무성은 지난달 28일 ‘3·1운동 100주년 즈음한 데모 등에 관한 주의 환기’라는 제목의 ‘스팟 정보’를 냈다. 한국에 체재 중이거나 갈 예정인 일본인은 데모 등을 피해가고 문제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만에 하나’ 피해를 당하거나 일본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정보를 접하면 대사관에 알려달라고도 했다.
이노마타는 “한국이 위험하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에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한국은 정말 일본인에게 위험한 곳일까. 그는 유학 중 ‘반일(反日) 사상’에 맞닥뜨린 적이 없다고 했다. 위안부 집회 등 ‘반일적’이라는 곳에도 가봤지만, 일본인이라고 위협하는 사람은 없었다. 헤이트 스피치(특정집단에 대한 차별·혐오 발언)에 접한 적도 없다. 이노마타는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증오와 원한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위안부 집회 등도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대상의 전부를 몹시 싫어하는 ‘반일’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라고 전했다. 이어 “뭘 가지고 ‘반일’이라는 걸까. 일본 정부의 방침에 이의를 제기하면 반일일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대학생들이 만드는 인터넷매체 ‘아라타니스’에 실린 글을 소개하는 것은 일본 언론에 보도되는 것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분법이나 흑백논리로 사물과 사상을 재단하는 정치인이나 일부 언론보다는 직접 현지를 경험한 대학생의 시각이 더 균형잡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앞서 ‘스팟 정보’와 흡사한 내용을 주장했던 일본 정치인에 대한 일본 누리꾼들의 ‘쿨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일본 자민당 나가오 다카시(長尾敬) 중의원 의원은 지난 1월 트위터에 “지금의 한국처럼 상식을 벗어난 나라에 가면 일본인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한국인에게 무슨 일을 당하는지’ 알려주는 리트윗이 잇따랐다.
“식당에 가면 아주머니가 ‘일본인? 이렇게 먹으면 맛있어’라며 고기 굽는 걸 도와주거나, 길을 헤매면 서툰 일본어로 알려줘 너무 힘들어.”
“더 먹으라고 반강제로 리필도 해주고 선물이라며 김치와 한국 김을 담아줬으니 한국에선 정말 뭘 당할지 몰라.”
뒤틀리고 선동적인 주장을 그야말로 넌지시 뒤집어서 되돌려준 것이다.
지난해 한·일 간 인적 교류는 사상 최고인 1000만명을 기록했다. 양국 간 정치·외교 갈등에도 불구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는 지속되고 있다. 이런 교류가 편향·왜곡된 담론에 휘둘리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는 시민의식을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런 움직임들이 언제까지 지탱될 수 있을지 우려될 정도로 최근 한·일 관계는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에 대한 반감과 갈등을 조장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일본 에선 ‘실언’이나 ‘망언’으로 치부되던 일부의 극단적 주장이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주장하게 됐다. 한일 위안부 합의, 징용공 판결, 초계기·레이더 갈등 등 잇따라는 현안을 두고, 모든 게 ‘반일’이라는 한 마디 말로 묶어 한국 때리기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이 말하는 ‘반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들 눈에는 폭력적인 억압과 부조리한 지배에 이의를 제기한 3·1운동을 기념하는 것도 ‘반일’일까. 오히려 ‘반일’ 딱지를 붙이고 증오를 부추기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도심 한복판에서 “조선인 나가라” 등 증오·혐오 집회가 버젓이 열리고, 서점에는 혐한(嫌韓) 책들이 경쟁하듯 진열돼 있는 곳에서 새삼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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