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 손해배상 판결, 11월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발표, 12월 일본 초계기와 한국 군함 간 ‘위협비행-레이더’ 논란 등으로 갈등이 커지고만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본질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라면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전쟁범죄 주범의 아들’이라고 한 것도 일본의 반발을 샀다.
지난 15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 당시 문 의장 발언에 대해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의 항의가 있었는지를 두고도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한일 관계가 사실 관계조차 엇갈리는 인식을 보이는 심각한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양국이 냉정을 유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현안 인식이 다를지라도, 상호 불신을 부채질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은 삼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일본 정계의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일본 언론은 여당인 자민당에서 한국에 대한 대응조치로 반도체 제조에 불가결한 불화수소 등 소재·부품이나 방위 물품의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국제질서와 규범을 준수한다는 일본이 초법적인 조치를 거론하는 것은 긴장만 높일 뿐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일본 내 ‘혐한(嫌韓) 기류’에 편승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야마모토 도모히로 의원은 지난달 31일 레이더 문제와 관련해 “거짓말쟁이는 도둑의 시작이 아니라 도둑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원래 도둑이어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나카야마 야스히데 의원은 지난 13일 “만약 한국에서 태어나 대통령이라도 됐다면 그 마지막은 사형 아니면 체포 아니면 자살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발언들이 국회 질의나 당 회의에서 버젓이 나오고 있다. 자민당 소속인 두 의원은 모두 일본 최대 극우단체 ‘일본회의’ 산하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와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원이다. 양국 정치인들이 비난전을 되풀이하면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일까.
신경 쓰이는 대목은 또 있다. 일본에선 한일 갈등과 관련해 한국이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빼놓지 않는다. 반일 감정이 높아져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에 역행하지 않을지 우려한다. 고노 외무상은 지난 15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3·1운동 100주년으로 반일 감정이 부추겨져 한일 관계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일본에선 ‘3·1운동’을 쉽게 말하지만, 3·1운동의 배경과 진행과정, 당시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갖는 의미를 살펴보려는 움직임은 드물다. 최근 남북 화해 움직임이나 재일한국·조선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헤이트 스피치’(혐오·차별 발언)가 넘쳐날 뿐 한반도의 질곡과 고통의 뿌리가 일제 식민 지배에 있음을 직시하는 이들은 소수다.
일본이 말하는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한국은 과거에 집착한다”라는 언설에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라는 원칙은 묻혀버린다.
“기억이 사라지면 없었던 일이 돼 버린다. 그렇다고 비관해선 안된다. 새롭게 기억해 젊은 세대에게 계승해야 한다.”
지난 17일 도쿄 릿쿄대에서 열린 시인 윤동주 74주기 행사에서 야나기하라 야스코는 12년째 행사를 주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도쿄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의 다즈케 가즈히사 실장은 “미래를 지향한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며 “2·8독립선언과 3·1운동 100주년이 과거 역사를 직시하고 극복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일본인이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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