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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람들

“힘들어도 지혜 짜내 살아가는 북한사람들의 억척스러움 느껴”

 <맥주와 대포동> 펴낸 재일 2세 문성희씨
 시장경제 밀려오는 북한의 실상 취재·조사
 “북한이 대포동보다 대동강 맥주 선택하길”

 “북한이라고 하면 독재, 핵, 미사일, 숙청 등 공포 이미지만 있는데, 그곳도 2500만명이 살고 있고, 그들도 항상 미사일만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그 속에서도 지혜를 짜내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어요.”
 ‘평양소주’를 함께 마시고 ‘탈피’(명태포)를 함께 찢으면서 북한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본 재일동포 2세가 있다. 일본 진보주간지 <슈칸 긴요비(週刊 金曜日)> 기자인 문성희씨(57). 지난해말 출간한 <맥주와 대포동-경제로 읽는 북한>은 기자로서, 연구자로서 북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쓴 ‘북한 경제 르포’다.
 문씨는 1984년 대학 시절 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후 2012년까지 15차례 북한을 찾았다. 그 가운데는 2번의 평양 특파원과 연구 목적의 현지 조사 등 장기체제도 4차례 포함된다.
 문씨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기자로 20년 가까이 일했다. 하지만 2002년 9월17일 사상 첫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를 인정한 것을 계기로 직장을 떠났다. 문씨는 29일 “중학생(요코타 메구미)을 납치하는 일만은 절대 없을 거라고 생각한 만큼 충격이 컸다”고 했다.
 2006년 어머니 간호를 구실로 <조선신보>를 그만뒀다. 번역 일을 하다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2008년 도쿄대 대학원(한국조선문화연구)에 들어갔다. 납치 문제의 배경인 한반도의 냉전 구조를 없애는 방법을 공부해보자, 북한을 하나의 연구대상으로 냉철하게 분석해보자고 생각했다. 1996년과 2003년 평양 특파원 등을 통해 경험했던 북한 경제의 변화를 연구 주제로 삼기로 했다. 문씨는 “북한 체제나 정책은 많은 분들이 연구를 깊이있게 해왔다”면서 “북한 사람들의 일상 생활, 희로애락을 알지 못하고 그 나라의 실상을 알았다고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2008년부터 다시 북한을 방문해 1~2개월 간 장기 체제를 반복했지만, 벽은 만만치 않았다. 안내원의 허가 없이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쉽지 않았고, 메모를 하거나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왕년의 ‘기자정신’을 발휘했다. 평양이나 지방의 시장, 공장, 길거리, 식당, 열차 등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최대한 머리 속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식품가격 등 ‘숫자’는 무조건 외우려고 했다. 사람들 눈을 피해 메모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컴퓨터에 정리하는 작업을 쌓아나갔다.
 ‘속내’를 듣기 위해선 술이 제일. 어딜 가도 평양소주를 들고 갖고, 대동강 맥주를 몇 박스씩 사뒀다.  
 “북한 친구들이나 안내원, 종업원 등과 함께 술을 마시고 탈피를 먹으면서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체제 얘기는 안 하지만, 지금 생활이나 경제가 어떤지 등을 알 수 있었죠.”
  2017년 여름 이번 책의 기초가 된 논문 <북한의 경제개혁·개방정책과 시장화>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문씨는 북한에 시장경제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고 했다. 이런 흐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대 들어 더욱 뚜렷해졌다고 했다.
 “길가에서 물건을 파는 ‘메뚜기 시장’이 많이 생겼습니다. 단속 요원이 오면 메뚜기처럼 도망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게 ‘진드기 시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상인들이 오히려 단속 요원들에게 항의하고 그 자리에 딱 붙어있는 거지요.”
 열차가 움직이지 않자 순식간에 생기는 ‘번개 시장’, 국정가격·시장가격과는 다른 ‘제 3의 가격’, 병마다 맛이 다른 초피(산초)술, 가짜 대동강 맥주……. 북한 정부는 싫어하는 이런 모습을 목격할 때 오히려 친근감을 느꼈다. 문씨는 “비록 제한된 환경에 있어도 사람들은 온갖 지혜를 짜내 살아나갔다”면서 “그 속에 생동하는 삶이 있었고, 사람들의 억척스러움이랄까 당참이랄까, 그런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새 여권으로 서울을 여행했다. 신촌에서 한국 맥주를 마시면서 평양에서 자주 가던 대동강변의 비어홀이 떠올랐다. 언젠가 한국 맥주와 대동강 맥주를 같은 가게에서 먹을 수 있기를.
 “지금까지 북한은 대포동처럼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것보다 대동강 맥주를 수출하고, 대동강변 비어홀에 외국인들이 몰려오도록 개방하는 길을 선택하길 바랍니다. 북한도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