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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람들

"미투 운동이 던진 문제의식 변화 한일 모두 공감할 계기 돼"

일본 독자들 만난 '82년생 김지영' 작가 조남주

 “일본인이지만 공감하고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독자 의견들을 봤습니다. 몇 년 전 일본에서 어린이집 추첨에 떨어진 워킹맘이 ‘일본 죽어’라는 글을 올렸고, 최근 도쿄의대가 여자 수험생 점수를 낮춘 입시부정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국가나 환경은 다르지만 사회 안에 비슷한 분위기나 요소가 있으니까 공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판매부수 100만부를 돌파하면서 사회현상까지 불러일으킨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41)가 19일 일본 독자들을 만났다.
 조 작가는 이날 도쿄(東京) 신주쿠(新宿)구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소설이 아니라도 이런 화두를 던지는 소설이 필요하다는 감상이 기억에 남는다”면서 “일본인들이 이런 주제나 고민들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일본 독자분들이 찾아주고 읽어주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이라 놀랍다”고도 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일본에서 한국소설로 이례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출판사인 지쿠마쇼보(筑摩書房)에 따르면 지난 12월초 일본어판이 발매된 지 4일만에 3쇄가 결정됐고, 도쿄 내 대형서점에선 품절이 속출했다. 현재까지 8만부가 발행됐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7일자에 ‘한국소설 <82년생 김지영> 이례의 베스트셀러’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실는 등 일본 언론들도 주목하고 있다. 조 작가의 단편 ‘현남 오빠에게’가 수록된 소설집도 최근 출간됐다. 
 조 작가는 일본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이 소설이 100만부가 팔리는 한국의 상황이 부럽다’는 글이 인상적이었다”면서 “일본에선 이 책이 한국에서 읽혔고 한국 여성을 둘러싼 변화를 알고, 그 변화와 연관지어 읽고 있구나 느꼈다”고 했다.
 <82년생 김지영>이 일본에서도 인기를 모으고 있는 데에는 일본에서도 성차별이 뿌리깊은 상황이 깔려있다. 임금 격차와 경력 단절 등 한·일 사회에서 공통되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괴로움’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자인 사이토 마리코(齊藤眞理子)는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경험에 이름을 붙이는 힘, ‘미투’는 자신에게 먼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을 가깝게 만드는 힘이 소설에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자들은 찬반이 나눠진 한국 내 반응과 한국 상황, 미투 운동과의 연관성 등에 대해 질문했다. 조 작가는 “독자들 의견에 대해 뭐라고 반론할 수 없다”면서도 “소설에서 (주인공) 김지영이 크게 변화하거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지만 현실에선 독자들이 자신들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주변과 나누는 계기가 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지영을 82년생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선 “눈에 보이는 제도적 불합리나 불평등은 많이 사라졌지만 성차별 관습은 여전히 남아 있어 그 안에서 혼란을 겪고 돌파구를 찾기 힘들었던 여성의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지영을 상담하던 남성 의사의 모순적인 여성 인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소설이 마무리되는 데 대해선 “남성들에게 ‘네 아내나 딸이라고 생각해봐라’면서 이해를 구하는 경우는 많은데 개인적인 호의나 감정으로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면서 “좀더 넓은 차원의 고민과 제도와 관습이 뒷받침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조 작가는 ‘이 소설이 사회를 어떻게 바꿨으면 하냐’는 질문에 “한국에선 보육과 고용과 관련한 이른바 ‘82년생 김지영법’이 발의됐고, 서지현 검사 성희롱 가해자는 1심에서 실형을 받아 구속됐다”면서 “미투 운동 과정에서 문제제기됐던 사건에 대한 결과가 계속 나올 것이고, 결과를 맺었으면 좋겠다. 그럴 때 다시 언급되기도 하고 사회의 변화와 함께 다시 기억되는 소설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소설이 자신에게도 일종의 ‘위안’이었음을 내비쳤다. 
 “김지영처럼 경력이 단절되고 육아를 하면서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내가 불성실하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책하던 시간이 길었어요. 소설을 쓰면서 김지영이 환경의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저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고, 내 선택이 사회와 무관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저에게도 좀 너그러워졌습니다.”
 기자회견 뒤엔 조 작가와 일본 아쿠타카와상 수상 작가인 가와카미 미에코(川上未映子)의 특별대담 행사가 열렸다.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는 일본 독자들의 요청에 힘입어 기획됐다. 행사장 예약좌석 400석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별도 마련된 생방송 관람장도 만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