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제/사람들

"장애인 실수 OK하는 조직 실적도 높아져"

ㆍ일본 도쿄대 ‘당사자연구팀’ 구마가야 신이치로

 일본 도쿄대 고마바(駒場)캠퍼스에 자리한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는 이공계의 첨단연구와 사회과학을 넘나들며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곳이다. 1987년 설립 이후 정보, 생물의화학, 환경에너지, 재료, 배리어프리(무장애), 사회과학 등 6개 분야 40개 연구실이 있다.
 구마가야 신이치로(熊谷晉一郞·41) 부교수 연구팀은 이 가운데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연구원·학생 외에 장애인 스태프들이 ‘당사자연구’를 하고 있다. 당사자연구는 병이나 장애가 있는 ‘당사자’들이 서로 경험을 나누면서 자신의 어려움의 매커니즘과 대처법을 찾아내려는 접근법이다. 일본에선 2001년 홋카이도 우라카와(浦河)정 ‘베델의 집’에 처음 도입됐다. 구마가야 부교수도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당사자’다.
 구마가야 부교수는 2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사자연구는 곤란한 일을 안고 있는 누구나가 가능하다”면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대상”이라고 말했다.

실패하지 않으면 일 못 익혀 서로 이해하며 차별 없애야

자립은 의존 않는 게 아니라 의존할 것 선택 가능한 상태

일반인 맞춰 디자인된 사회 대중교통 언어 등 장벽 허물어야 

어렸을 때 ‘건강인’처럼 되기 위해 혹독한 재활훈련을 받아야 했던 그는 당사자운동을 접하면서 희망을 얻었다. 당사자운동은 “장애는 피부 안(의학모델)이 아니라 바깥(사회모델)에 있다”고 본다. ‘내 다리에 장애가 있으니까’라는 게 의료모델이라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은 사회가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는 게 사회모델이다. 하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장애의 경우는 ‘다른 사람도 다 그래’ 같은 동화형 차별을 받고 자책하거나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당사자연구는 여기에서 착안한다. 구마가야 부교수는 “(당사자)운동 전에 연구를 하지 않으면 어디를 어떻게 바꿔야할지 모른다”라고 했다.
 당사자연구가 진척되고 있는 분야는 조현병이다. 자폐증 등 발달장애, 약물의존증에서도 성과가 나오고 있다. 당사자연구와 취지를 같이하는 움직임도 진행되고 있다. 최근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장애인과 전문가가 함께 연구하는 ‘코프러덕션’을 특집으로 다뤘다. 의학전문지 ‘랜싯’도 논문 체크에 당사자를 넣을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도쿄대가 장애인 스태프를 채용해 당사자연구를 확대하려는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다.
 구마가야 부교수는 “건물이나 대중교통, 도구뿐만 아니라 언어나 지식, 신념, 가치관도 ‘배리어프리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언어 등도 다수파인 비장애인에 맞춰서 디자인된 것이기 때문이다.
 당사자연구는 결국 차별 문제에 가닿는다. 구마가야 부교수에 따르면 현재 의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게 스티그마(Stigma· 차별) 효과다. 차별이 수명을 단축시키거나 일을 찾기 어렵도록 하는 게 증명되고 있다. “스티그마 효과를 줄이려는 세계적인 움직임에서 당사자연구는 유력한 분야”라고 했다.
 구마가야 부교수는 “차별은 무지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고통이나 괴로움을 이해하는 게 차별의 특효약”이라면서 “기업이나 학교 등 차별이 만연한 곳에서 당사자연구가 하나의 문화가 돼야 한다 ”고 강조했다.
 이런 생각에는 의료 현장에서의 경험이 영향을 줬다. 2001년 도쿄대 의학과를 졸업한 뒤 수련의 등으로 소아과에서 일했다. 몸이 불편한 탓에 채혈을 제대로 하기 위해 ‘이상한 장치’를 만들기도 했지만,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다. 주변에선 ‘괜찮냐’고 물었다. 보호자들은 ‘우리 아이는 맡기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전환점이 온 건 2년차 연수에서 배속된 병원에서였다. 무척 분주한 곳이었다. 그 때문에 누구라도 나름의 ‘장애’가 있는 것을 전제로 서로 돕는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책임은 내가 질테니 주사바늘을 푹 찌르라”는 부장 의사의 말에 난관을 넘어설 수 있었다. 
 “실패하지 않으면 일을 못 익힙니다. 비장애인은 실패할 권리가 있지만, 장애인은 실패하면 타격이 너무 큽니다. ‘봐라, 역시’라고 하지요. 실패를 ‘오케이’하고, 거기에서 배우는 조직이 장애인이 일하기 쉬울 뿐 아니라 실적도 높아집니다.”
 장애인의 ‘자립’을 위해선 사회에 의존할 곳이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탓에 대피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계단으로 대피했다. 비장애인은 엘리베이터나 계단, 사다리 등 의존할 것이 많지만, 그것들이 없으면 대피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다만 의존할 곳이 많기 때문에 자신은 의존하지 않는다고, 강하다고 착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자립은 ‘의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존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세상이 장애인용으로 돼 있지 않으니 장애인은 의존할 수 있는 것이 무척 적습니다. 장애인이 너무 의존하는 게 아니라 의존할 게 부족하기 때문에 자립이 어려운 겁니다. 인간은 약함을 서로 보충하고 의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면서 강해졌어요. 장애인만 ‘의존하지 말라’는 것은 이상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