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23일 도쿄 고쿄에서 85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도쿄|로이터연합뉴스
“헤이세이(平成·현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가 전쟁이 없는 시대로 끝나려는 데 진심으로 안도하고 있다.”
내년 4월말 퇴위하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지난 30년간의 재위를 되돌아보면서 심경을 털어놓았다. 23일 85세 생일을 맞아 지난 20일 도쿄 고쿄(皇居·일왕의 거처)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키히토 일왕은 “전후(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전쟁에서의 많은 희생과 국민의 한결같은 노력으로 구축된 것을 잊지 않고, 전후 태어난 세대에도 사실을 올바로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끔씩 감회에 젖은 듯 목소리가 떨렸다.
아키히토 일왕은 오키나와(沖繩)에 대해 “앞선 (2차 세계) 대전을 포함해 실로 긴 고난의 역사를 걸어왔다”면서 “오키나와 사람들이 견뎌온 희생에 마음을 기울여온 생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차 세계대전 말인 1945년 오키나와에선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한 일본군과 미군의 전투가 벌어져 주민들만 10만명 이상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아키히토 일왕은 지금까지 왕세자 시절을 포함해 오키나와를 11차례 방문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또 사이판, 팔라우, 필리핀 등을 방문해 전쟁 희생자들을 추도한 것에 대해 “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동일본대지진(2011년)이나 한신(阪神)대지진(1995년) 등의 재해를 언급하면서 “많은 인명이 손실되고, 숫자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것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낀다”면서도 자원봉사 등을 통해 서로 돕는 모습에 “항상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취임 이후 헌법하에 상징으로 자리잡은 천황(天皇)의 바람직한 자세를 추구해 왔다”며 “양위의 날을 맞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런) 자세를 추구하면서 일상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욱 떨리는 목소리로 “천황으로서의 여행을 끝내려고 하는 지금, 상징으로서의 내 입장을 받아들이고 계속 지지해준 많은 국민에 충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히로히토(裕仁·1901∼1989년) 일왕의 장남인 아키히토 일왕은 ‘국가의 상징’으로 일왕을 규정한 현행 헌법에 충실하면서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적극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아버지 히로히토는 ‘전쟁 책임론’에서 평생 자유로울 수 없었던 반면 11세 때 패전을 지켜본 아키히토 일왕은 일본 국민과 고락을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가 상징’으로서의 일왕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1989년 즉위 뒤 사이판과 오키나와 등 태평양전쟁 무대를 찾아 희생자를 위령하거나, 재해 지역을 방문해 이재민들과 눈을 맞추며 얘기했다. 이 때문에 일본 국민들이 일왕에게 보내는 경외심은 지대하다는 게 중평이다.
아키히토 일왕의 행보는 평화헌법 개정을 정치적 과업으로 내세우면서 한국 등 주변국에 사과를 거부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행보와도 대조를 이루었다. 그는 지난 4년간 2차대전 패전일(종전일)인 8월15일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반복해서 말해왔다. 반면 아베 총리는 ‘가해’와 ‘반성’ 언급을 피해왔다.
아키히토 일왕은 또 2001년 12월 생일 기자회견에서 “내 자신으로서는 간무(桓武) 천황(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데 것에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내년 4월30일 퇴임하고 다음날인 5월1일 장남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58)가 새 일왕으로 즉위한다.
23일 고쿄 주변에는 아키히토 일왕의 재임 중 마지막 생일을 축하하려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아키히토 일왕 내외와 나루히토 왕세자 내외 등이 나와 시민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이날 고쿄에는 아키히토 일왕 재임 중 가장 많은 8만2850명의 인파가 몰렸다고 궁내청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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