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F-35 등 우리 전투기를 대량 구입하려 하고 있어 정말 감사하고 있다.”
지난 11월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미국산 무기 구매에 사의를 표한 것이다. 이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쓴웃음을 지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아베 정권에서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 일본의 군사력 강화 욕구와 트럼프 정부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미국 제품을 사라)’ 압박이 맞물린 결과지만, 그 여파로 일본 방위산업은 곤경에 처하고 있다. 국산 전투기 제조에 암운이 드리우는 등 아베 정권이 내건 ‘국내 방위산업 육성’은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르면 오는 18일 각의에서 결정될 ‘방위계획대강’과 ‘중기 방위력 정비계획’에는 미국산 대형 무기의 도입이 담긴다. 일본 정부는 이미 도입을 결정한 미 공군의 F-35A 전투기 42대에 더해 추가로 70∼100대의 F-35를 구입할 방침이다. 육상 배치형 요격미사일시스템 ‘이지스 어쇼어’ 도입도 결정돼 있다.
특히 아베 정권 들어 미국으로부터 ‘해외 유상군사원조(FMS)’ 방식으로 구입하는 무기 도입비가 급증했다. 2019년도 FMS 방식의 무기 구입액은 2018년 4804억엔(약 4조8000억원)보다 70% 증가한 6917억엔(6조9000억원)이다. 이는 8년 전인 2011년 589억엔보다 10배 넘게 부푼 것이다.
아베 정권에서 뚜렷해진 ‘바이 아메리칸’의 청구서는 일본 방위산업으로 전가되고 있다. FMS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일본 방위산업의 수익이나 기술 개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방위성은 도입이 진행 중인 F35-A 가운데 2019~2020년 도입 예정인 8대에 대해 국내 기업의 참가를 중지하고 완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FMS로 인한 고가의 무기 수입 증가가 방위예산을 압박한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직접 완제품을 수입하는 편이 예산면에선 낫다. FMS가 증가하는 가운데 이런 부분을 삭감하지 않으면 꾸려나갈 수 없다”라고 밝혔다.
FMS 증가는 일본 방산업체의 경영을 압박하고 있다. 방산업체인 다마가와(多摩川)정기는 과거 매상 전체를 차지하던 방위 부문이 현재 16%로 떨어졌다. 회사 측은 “일본 정부가 F-35기 등을 기체별로 미국으로부터 구입하기 때문에 개발비가 없어졌다”고 밝혔다. 방위성이 2016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방위산업체 72곳 가운데 52곳이 하청회사의 철수나 도산 등으로 공급선이 끊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일본 정부가 연내에 판단할 것으로 전망되는 F-2 후계기에 대해서도 ‘메이드 인 재팬’의 채택은 어려운 상황이다. 재무성 등에서 고비용을 문제삼고 있는 데다 소프트웨어 등의 기술도 미숙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서 아베 정권은 2014년 국내 방위산업 활성화를 꾀하기 위해 ‘무기수출 3원칙’을 대폭 완화했지만, 자위대에 기대온 일본 방위산업은 국제경쟁에 뒤지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군사 확대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선 미국산 무기 도입이 손쉬운 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산 무기 구입을 강하게 압박하는 가운데 일본이 국산 전투기 제조를 단행할 것인지 의문시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미국산 무기 대량 구매는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피하기 위한 카드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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