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간 징용공 책임을 방기해온 데 대한 청구서가 어제 한국 대법원의 판결입니다.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와 마주하고 아시아와의 공생을 위해 한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주세요.”
오전 8시15분쯤 일본 도쿄 시나가와(品川)역. 출근길 직장인들이 쏟아져나오는 출구 앞에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나고야 소송 모임) 등 시민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들은 전날 한국 대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에게 강제징용과 근로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을 거론하면서 미쓰비시중공업 측이 피해자 구제를 위한 교섭에 속히 임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 대법원 정신대 소송, 원고에 미소, 미쓰비시중공업에 패소’라고 적힌 플래카드 앞에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았고, 같은 제목의 전단지를 행인들에게 나눠줬다.
매주 금요일 미쓰비시중공업 본사가 있는 시나가와역 앞에서 열리는 ‘금요행동’ 집회는 이번이 448회째다. 2007년 7월 시작됐다. 2009년 교섭을 모색하기 위해 중단됐지만, 피해자에게 배상할 수 없다는 미쓰비시중공업 측 입장을 확인한 뒤 2012년 재개됐다.
전날 한국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이날 집회에는 평소보다 많은 20명 정도가 참가했다. 이번 소송을 지원해왔던 나고야와 히로시마의 시민단체 회원뿐만 아니라 홋카이도, 오사카, 나가사키 등에서도 먼 길을 달려왔다.
이들은 전날 대법원 판결에 대해 “당연한 판결”이라면서 “일본 정부가 한반도를 식민지배했고, 많은 이들을 강제동원해 가혹한 노동을 시킨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징용공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 측 대응에 대해 “국제 상식에 반한다”고 반박했다. 미쓰비시중공업 측에는 “대법원이 위자료로 인정한 금액을 지불, 이 재판을 계기로 화해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강제징용을 비롯한 식민지 지배에 대한 행인들의 호응은 크지 않았다. 역 앞을 지나가는 시민 대부분은 플래카드를 흘깃흘깃 쳐다보면서 그대로 지나갔다. 전단지를 받아가는 이들은 소수였다. 나가사키에서 왔다는 히라노 노부토 전국피폭2세단체연락협의회 전 회장은 “일본인들은 히로시마나 나가사카 원폭 문제에 대해선 자신이 희생자라는 생각이 있으니까 후하지만, 징용공 문제에 대해선 냉엄하고 내셔널리즘이 강하다”면서 “이상한 상태”라고 말했다.
시나가와역 앞에서 1시간20분 가량 진행된 이날 ‘금요집회’는 인근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앞으로 장소를 이동해 이어졌다. 경비 직원들이 본사 입구를 막아섰다. 전단지와 ‘히로시마 미쓰비시 징용공 소송 지원 시민모임’의 요청서를 전달하기 위해 데라오 데루미 나고야 소송 모임 공동대표 혼자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게 허용됐다. 데라오 대표는 “처음에는 경비 직원에게 건네라고 하다가 담당 과장에게 직접 건네고 싶다고 하자 (밖에서 잘 안보이는) 가려진 곳에 담당 과장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요청서에는 “이번 판결은 인권유린의 가해자인 미쓰비시중공업이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것”이라며 “몇 십년이 지나도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불법행위의 책임은 지워지지 않는다”라고 적혀 있었다.
미쓰비시중공업 측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담당 과장은 “제대로 받았다”고만 말했다고 한다. 한 시민단체 회원은 “내용까지 제대로 받아달라”고 말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전날 판결 직후 홈페이지에 “이번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과 이에 관한 일본 정부의 견해, 일본의 확정판결에 반하는 것으로 극히 유감”이라면서 “향후 일본 정부와 연락을 취하면서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데라오 대표는 “일본 정부의 잘못된 주장을 그대로 따라 했다. 터무니 없다”고 했다. 또다른 시민단체 회원은 “미쓰비시는 73년이 지난 지금도 ‘죄송하다’라는 말 한 마디 안하고 있다”면서 “이런 기업을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11시20분쯤 집회를 끝낸 이들은 또다른 근로정신대 소송 원고측인 후지코시(不二越) 본사 앞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시오도메(汐留)역 쪽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이날 후지코시 본사 앞에선 수십 명이 참여해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신속한 배상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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