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도심에서 전철로 50분 정도 걸리는 지바(千葉)현 마쿠하리(幕張) 신도심. 520㏊에 이르는 매립지에 전시·공연시설인 ‘마쿠하리 멧세’를 비롯, 업무·상업·교육·주거시설 등이 밀집해 있다. 마쿠하리 신도심을 가로지르는 도로 10m 아래에는 양상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미이용 공공시설을 첨단산업으로 활용한 사례로 주목받는 전자동식 지하식물공장 ‘마쿠하리 팜 베치카(vechica)’다.
지난 27일 팜 베치카의 철제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자 거대한 터널이 뚫어져 있었다. 지상에서 내려온 컨베이어가 터널 한켠의 실험실 같은 공장에 이어져 있었다. 그 안에 층층이 늘어선 철제 선반 위에는 양상추, 베이비리프, 식용꽃 등이 재배되고 있었다. 팜 베치카를 운영하는 이토(伊東)전기 오카다 노부아키(岡田展明) 본부장은 “지상에서 심은 모종을 20일 간 3㎝까지 키워 컨베이어로 지하로 내려보내 24일 간 약 15㎝까지 성장시킨 뒤 이를 다시 지상으로 반송하는 자동시스템을 통해 양상추를 출하한다”고 밝혔다.
팜 베치카가 자리한 장소는 원래 상수도관, 전선, 통신케이블, 난방배관 등 설비를 수용하는 지하공간인 ‘공동구’다. 높이 4m, 폭 6m의 공동구는 마쿠하리 신도심 지하 3.1㎞에 걸쳐 있다. 원래 신도심 확대를 예상하고 지하에 광범위하게 정비를 진행했지만, 경기 침체로 1995년 완성 이후 20년 넘게 사용되지 않았다. 도키 다케후미(土岐健文) 지바현 기업토지관리국 부국장은 “공동구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와인 저장소 등도 검토했지만, 마쿠하리를 신산업 중심지로 키워보겠다는 생각으로 전자동식 식물공장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사업자로는 전 세계 반송기기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한편 자동식 식물공장 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던 이토전기가 선정됐다. 공동구 부지를 지바현으로부터 임차, 약 30m에 설비를 갖추고 채소를 자동 재배하는 실험을 지난해 12월 시작했다.
지하는 온도가 18~20도 정도로 일정해 에어컨 등 공조설비가 필요하지 않다. 전력 비용을 일반적인 식물공장의 약 3분의 1로 낮추는 게 가능하다. 공동구를 이용하기 때문에 공장 건설 비용도 줄어들고, 도쿄 등 대도시와 가까워 물류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시설 설치가 제한된다는 것은 단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한 자동 시스템을 도입했다. 채소는 트레이 위에 담겨 ‘셀(cell)’이라고 부르는 상자 모양의 폐쇄형 공간에서 재배된다. ‘셀’은 채소의 성장을 촉진하는 발광다이오드(LED)와 배양액을 공급하는 튜브, 온도조절용 팬을 갖췄다. 셀을 여러 개 조립할 수 있고, 롤러가 달려 있어 트레이를 이동시킬 수 있다. 중앙제어장치와 자동센서 등을 통해 LED와 배양액, 온·습도,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조절한다. 오카다 본부장은 “고베시에 있는 이토전기 본사에서도 상황을 체크할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매일 200포기의 양상추를 생산하고 있다. 인근 호텔에 일부를 공급하고, 나머지는 결식아동을 위한 ‘어린이 식당’에 무료 제공하고 있다. 2020년까지 총연장 800m로 시설을 늘려, 하루 5000포기 생산 체제를 갖춰 시판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수확과 포장, 트레이 세탁 등 작업을 자동화하는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이토전기 측은 IoT기술을 활용해 재배조건을 각 구역별로 설정해 고객의 요구에 맞춘 ‘커스터마이징 채소’를 생산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다. 고객 요구에 맞춰 잎의 크기나 식감을 조절하고, 칼슘을 보충해주는 등의 기능성 야채도 재배하겠다는 것이다. 도키 부국장은 “가장 큰 장점은 안정·안심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면서 “일본은 물론 채소 재배가 어려운 해외 지역에도 기술을 보급하기 위한 근거지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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