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다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일본 여자 컬링 대표팀이 외쳤던 이 말이 올해 일본의 유행어로 선정됐다. ‘소다네’는 ‘그렇지’라는 뜻. 컬링 대표팀이 경기 중 작전회의에서 출신지 홋카이도 억양이 섞인 ‘소다네’를 연발하는 모습이 신선하다는 평가를 얻었다.
‘소다네’ 이외에 ‘2018년 신어·유행어 톱 10’에는 ‘이(e)스포츠’, ‘#미투(Me too)’, ‘재해급 더위’, ‘슈퍼 자원봉사자’, ‘고항(밥) 논법’ ‘옷상즈러브(아저씨의 사랑)’, ‘멍하니 사는 게 아니야’, ‘장난 아니다’ 등이 들었다. 절반 가까이가 맥락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다.
그나마 익숙한 게 ‘밥 논법’이다. “밥을 먹었느냐”는 질문에 마치 ‘쌀밥’에 대해 질문받은 것처럼 “(빵은 먹었지만) 밥을 먹지 않았다”라고 강변하는 논법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사학스캔들 추궁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정권에 대한 일본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밥 논법’ 식의 얼버무리기나 물타기, 발뺌하기는 아베 정권에서 일상적인 일이다. 3주 전 이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일본 정부가 ‘징용공’이라는 표현을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바꿔 강제성을 희석하려는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마이니치신문은 최근 ‘아베 정권의 바꿔 말하기 본질’이라는 기사에서 10개 이상의 사례를 들었다.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안전보장법제’를 ‘평화안전법제’라고 했고, 무기 수출을 ‘방위장비 이전’이라고 했다. 남수단 평화유지활동(PKO)을 하던 육상자위대의 전투를 ‘무력 충돌’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당시 상황을 ‘전투’라고 기록한 일일보고를 은폐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전력(戰力) 보유 금지와 교전권 불인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 9조를 일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자위대 최대 호위함인 ‘이즈모’를 전투기 이착륙이 가능한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계획을 ‘방위계획 대강’에 명기하려고 하면서 ‘다용도 운용 모함(母艦·항공모함)’을 ‘다용도 운용 호위함’으로 부르기로 했다. 공격형 무기인 항공모함 보유가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만 방위력을 최소한 행사한다는 전수방위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따지고 보면 지난해 유행어 대상은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알아서 행동)’였다. ‘아베 1강’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총리 관저의 의향을 따라 ‘알아서 기는’ 행태가 두드러지고 있음을 비꼰 말이다. 이런 ‘손타쿠’의 구조가 ‘밥 논법’ 식의 논리를 더해 더욱 확대되고 있는 모습이다. 불리하거나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알아서 숨기거나 얼버무려 넘기려는 것이다.
지난 8일 통과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의 국회 심의과정은 이런 상황을 여실하게 보여줬다. 외국인노동자 수용 확대를 골자로 하는 이 법안에 대해선 애매한 내용이 많고 중요 부분은 정부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어 졸속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여당은 국회 심의 시간을 채웠다는 이유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중·참의원 심의시간은 최근 주요 법안 심의시간을 밑도는 38시간이었다. 정부는 법안에 불리한 자료는 내지 않았다. 심지어 실종 기능실습생 설문 결과를 제시하면서 실종 이유에 ‘저임금’이라는 답변 비율을 높이고 ‘관리가 엄격했다’는 비율을 낮췄다가 들통이 났다.
‘국회 심의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중·참의원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으니 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 윗분이 정한 이상 대충 시늉을 하고 빨리 통과시키는 게 상책이다. 오래 끌어봤자 문제만 더 생긴다.’
이런 속내일까. 아베 정권 인사들, 작전회의에서 이렇게 연신 외쳤을 지도 모르겠다. “소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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