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전에는) 반바지에 선글라스여서 빈축을 샀는데….”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69)가 37년 만에 일본 언론들 앞에 섰다. 지난 4일 모교인 와세다(早稻田)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무라카미는 이날 자신의 원고와 작품, 음반 등 2만여점의 소장자료를 모교에 기증하겠다고 발표했다고 5일 일본 언론이 전했다.
무라카미가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한 것은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년)가 영화화된 1981년 이후 37년 만이다. 카키색 재킷과 운동화 등 캐주얼한 복장으로 회견장에 나타난 무라카미는 “(당시는) 나와 상관없이 영화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나는 옆에서 싱글벙글하고 있었을 뿐이니까 기자회견이라고도 할 수 없다”라고 했다.
그는 기증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선 “40년 가까이 글을 써왔더니 원고와 자료, 서한 등이 가득 쌓여 집에도 사무실에도 보관할 수 없게 됐다”며 “아이가 없어서 내가 죽은 뒤 자료가 흩어져 버리면 곤란하다”고 했다. 이어 “모교에서 장소를 만들어 아카이브를 관리해 주기로 해 정말 감사하다”면서 “내 작품을 연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내 작품에만 한정하지 말고 국제적 문화교류의 한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와세다대 측은 기증받은 자료를 활용해 글로벌 연구센터 ‘무라카미 라이브러리’(가칭)를 설립할 예정이다. 무라카미는 “처음에 ‘무라카미 하루키 기념관’으로 하자는 안도 있었지만, 아직 죽지 않아서”라고 농담하면서 “학생에게 교실, 집, 아르바이트 장소 외에도 특별한 곳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음악 애호가로도 널리 알려진 무라카미는 수집한 음반 1만여점도 기증할 계획이다. 무라카미는 “책은 읽으면 금방 팔곤 해서 별 집착이 없지만, 레코드만은 확실히 모으고 있다”며 “욕심을 낸다면, 음반이나 서적을 보관한 서재 기능을 가진 공간도 마련해 음반 콘서트를 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소설과 번역 등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다. “소설의 제일 중요한 힘은 이야기라고 항상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야기가 마음에 쓱 들어가는 듯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 언어를 넘어 교환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은 인터넷 시대로, 점점 여러 가치가 교환되는 시대이니까 소설에는 이야기를 무기로 돌파해가는 힘이 내포돼있다”면서 “젊든 젊지 않든 그런 것을 추구할 사람이 나와주면 기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이 번역, 즉 언어의 교환이라는 등가 교류에 의해 커왔다는 의식이 매우 높다”면서 “일본 문학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질식상태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무라카미는 “그런 의미에서 이 장소가 문학이나 문화의 통풍이 잘 되는 국제교류·교환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음악이 집필에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선 “매일 아침 4시나 4시반쯤 일어나 일을 하고 있는데 전날 밤부터 레코드를 골라서 놓아둔다”면서 “그것을 들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 즐겁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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