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둘러싼 일본 정부와 오키나와(沖繩)현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정부가 오키나와현의 매립공사 중단 조치를 ‘꼼수’로 정지시키고 다음달부터 공사를 강행키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 9월30일 기지 이전 반대파인 지사 당선으로 분출된 오키나와의 민의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미·일 간 신뢰’ 등을 이유로 깔아뭉개고 가려는 모양새다.
31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시이 게이치(石井啓一) 국토교통상은 전날 후텐마(普天間) 미군 비행장이 이전할 헤노코(邊野古) 연안부 공사를 중단시킨 오키나와현의 매립승인 철회 조치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결정은 지난 17일 방위성이 오키나와현의 매립승인 철회에 대해 국토교통성에 행정불복심사를 청구하고 효력 정지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이시이 국토교통상은 “공사가 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면 후텐마비행장 주변의 위험성 제거와 소음피해 방지를 조기 실현하는 게 곤란해지고, 미·일 간의 신뢰와 동맹관계 등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방위성은 이번 결정에 따라 지난 8월 이후 중단된 매립공사를 조속히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번 효력정지 결정이 이미 ‘공사 재개’로 결론을 정해놓은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방위성 산하 오키나와 방위국의 행정불복심사 청구에 국토교통성이 효력정지 결정을 내리는 ‘집안 거래’이기 때문이다. 법학자들 사이에선 국민이 행정에 대해 불복할 경우 이용하는 행정불복심사 청구를 정부기관이 이용하는 것은 제도 남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방위성은 2015년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 전 오키나와 지사가 매립승인을 취소했을 때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
아베 총리는 이날 “법치국가로서 법률에 근거해 필요한 법적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신문은 “아베 총리는 지난 29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오키나와 여러분에게 다가가겠다’고 했지만, 이번 수법을 보는 한 말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키나와현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다마키 데니 지사는 “지사 선거에서 나타난 민의를 짓밟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법치국가에서 있어서는 안될 행위”라며 “법의 취지를 왜곡하면서까지 공사를 강행하려고 하는 정부의 대응에 강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다마키 지사는 지난 9월30일 오나가 전 지사의 별세로 치러진 지사 선거에서 기지 이전 반대를 내걸어 아베 정권이 전면 지원한 후보를 큰 표차로 눌렀다.
오키나와현 당국은 지방공공단체와 중앙정부의 분쟁을 조정하는 ‘국가·지방계쟁처리위원회’에 심사를 신청할 방침이다. 미군기지 이전계획에 대한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도 내년 봄 실시될 예정이다. 주민투표 결과는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정부와 오키나와현 대립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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