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4일 총리 관저에서 크리스틴 라가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만나 “(아베 내각) 역대 최고인 5명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한 차관급 인사에서 부(副)대신 25명 중 여성이 지난 개각 때보다 2명 늘어난 5명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25세 이상 여성 취업률은 미국을 웃돌고, 임원 수도 정권 발족 전보다 2.5배 늘었다”고 덧붙였다.
라가드 총재는 “일본은 여성 활약 면에 세계의 챔피언 같은 존재”라고 덕담하면서도 일본이 노동시장에서의 성 격차를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중 한 명이자 선도적인 여권(女權) 옹호자로 꼽힌다.
아베 총리가 라가드 총재 앞에서 낯간지러운 자랑을 한 이유가 있다. 지난 2일 출범한 4차 아베 개조(改造) 내각에서 아베 총리를 포함한 각료 20명 가운데 여성이 단 한 명밖에 없는 데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부대신에 여성을 늘렸다고 자랑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정무관(차관급) 인사에서 여성은 지난 번보다 1명이 줄어든 1명이다. 한 일본 언론인은 “부대신은 큰 권한이 없다”며 “개각이 파벌의 의향에 얽매였고 여성 각료가 적다는 비판을 물타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력을 갖고 있는 선진국이다. 하지만 이런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정치와 경제에서 여성 참여가 저조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7’에선 조사대상 144개국 중 114위를 차지했다.
이번 개각에서 이런 상황이 재확인됐지만, 단지 그것만이 아니다. 아베 정권의 ‘본심’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은 ‘여성 활약’을 간판 정책으로 적극 홍보해왔다. 실제 정권 출범 당시 여성 각료가 5명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개각 때마다 여성 각료가 3명, 2명으로 점차 줄어들어 이번에 달랑 1명이 됐다.
지난해에는 국제여성회의(WAW)를 유치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를 초청했다. 아베 총리는 이방카가 설립에 관여한 ‘여성기업가기금 이니셔티브’ 기금으로 5000만달러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유엔 연설에선 “여성이 빛나는 사회”를 말했다.
이번 개각으로 그런 ‘여성 활약’ 구호를 내팽개친 셈이 됐다. 아베 총리도 이를 의식한 듯 개각 후 기자회견에서 “(여성 각료의 수가) 적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일한 여성 각료인 가타야마 사쓰키 지방창생상에 대해 “2명, 3명 몫의 발신력을 갖고 일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가타야마 지방창생상에게 2명, 3명 몫의 권한을 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여성이 2명, 3명 몫을 해야만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일본사회의 풍토만 부각시킬 뿐이다.
아베 총리는 심지어 “일본은 여성 활약 사회가 막 시작돼 앞으로 점점 입각할 인재가 자랄 것”이라고 했다. 발족 6년이 다 돼가는 정권이 할 말인가 싶다. 정말 생각이 있었으면 그동안 여성 의원과 관료를 늘릴 수 있었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여성후보자 비율은 전체 17.7%에 훨씬 못 미치는 7.5%였다.
‘1억 총활약 사회’ ‘일하는 방식 개혁’ ‘사람 만들기 혁명’….
아베 정권은 그간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신조어를 잇달아 만들어 정권의 치적을 강조하고 비판을 피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번 개각을 통해 적어도 ‘여성 활약’은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오히려 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사건에 대해 “함정에 빠진 거라는 의견도 많다” 등으로 옹호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건재한 게 정권의 본질에 가까운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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