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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대인들 위해 모금 나선 무슬림...증오와 치유, 트럼프 시대 미국의 두 풍경

 “우리는 인종차별주의, 반유대주의, 이슬람혐오증에 함께 맞서야 합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사는 무슬림 타레크 엘메시디는 요즘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계기가 된 것은 지난달 17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일어난 유대인 묘지 훼손 사건이었다. 묘지석 170여개가 뽑히거나 쓰러진 채 발견됐다.
 26일에는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유대인 묘지에서도 75∼100기의 묘지석이 훼손됐다. 엘메시디는 이 사건 뒤 모금에 나섰고, 28일(현지시간)까지 목표액 2만달러의 7배가 넘는 14만달러(약 1억5820만원)가 모였다. 엘메시디는 이날 CNN 인터뷰에서 “모든 무슬림이 유대인 형제자매들과 함께 편견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유대인 등 특정 종교·집단을 겨냥해 공공기물을 파괴하는 반달리즘 공격이 최근 급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커지고 있는 미국 내 반유대주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우려를 자아냈다.
 하지만 증오범죄에 맞서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차별과 편견에 맞서려는 연대의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무슬림단체 ‘아흐마디야 무슬림공동체’ 필라델피아 지부 회원들은 유대인 묘지를 방문해 훼손된 비석을 치우고 유대인들을 위로했다. 이 단체 대변인 살람 바티는 “이런 공격은 유대인 형제자매뿐만 아니라 우리 무슬림을 겨냥한 것”이라면서 “극단주의에 맞서 우리 동료를 보호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2일 캔자스주 캔자스시티 근교의 술집에서 백인 남성 애덤 퓨린튼(51)이 총을 난사해 스리니바스 쿠치보트라(32)가 숨지고, 동료 알로크 마다사니(32)가 부상을 입었다. 두 사람은 정보기술(IT) 회사에서 일하는 인도계 기술자들이었다. 연방수사국(FBI)은 이 사건을 증오범죄로 규정했다.
 당시 현장에서 다친 사람이 1명 더 있었다.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퓨린튼을 제지하고 나선 이언 그릴릿(24)도 총탄에 가슴과 손을 맞았다. 사건이 알려지자 인터넷에 희생자를 돕기 위한 사이트가 개설돼 28일까지 18만달러가 모금됐다. 그릴릿을 위한 모금 사이트에도 10만달러 가까이 모였다. 그릴릿을 ‘영웅’으로 칭송하면서 쾌유를 비는 댓글들도 계속 올라오고 있다. 그릴릿은 캔자스시티스타와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했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면서 “그가 어디 출신이고, 어떤 민족이냐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 취임 뒤 증오범죄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캔자스 총격 사건의 희생자 쿠치보트라는 증오범죄를 걱정하는 아내가 인도로 돌아가자 하는데도 괜찮다면서 계속 머물다가 변을 당했다. 27일에는 미국 11개 주의 유대인 학교와 주민센터에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왔다. 폭탄 위협은 모두 가짜로 판명 났지만, 올 들어 유대인 커뮤니티를 겨냥한 폭탄테러 위협만 수십 차례 신고됐다.
 트럼프는 28일 이 사건들을 언급하면서 상·하원 합동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유대인 주민센터에 대한 협박과 유대인 묘지 파손, 지난주 캔자스시티 총격 사건은 우리가 정책에선 갈라져 있을지 몰라도 온갖 증오와 악을 비난하며 단결해 맞서는 나라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증오범죄나 극단주의와 뚜렷하게 선을 긋지 않고 있다는 비난을 의식한 발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