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유대인 공동묘지에서 100개 가까운 묘지석이 훼손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주 세인트루이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 같은 ‘공공기물 파손 행위(vandalism)’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커지고 있는 미국내 반(反)유대주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현지시간) ABC6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필라델피아 북부에 있는 유대인 공동묘지 마운트 카멀에서 묘지석 75~100개가 쓰러져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했다. 일부 묘지석은 깨어진 채였다. 경찰 측은 “대개가 유대인 묘지라서 사실 관계를 조사해봐야 한다”면서 “이번 일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최근 빈발하고 있는 유대인을 겨냥한 공공기물 파손 행위로 보인다. 지난 20일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외곽의 한 유대인 공동묘지도 170여개의 묘지석이 깨지는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말 뉴욕과 코네티컷주의 유대인 공동묘지들도 낙서로 훼손됐다. 최근에는 10개주의 유대인 주민센터 11곳에 폭탄테러 협박전화가 걸려와 주민들이 대피하는 일도 벌어졌다.
유대인들에게 묘지 훼손은 과거 ‘어두운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적인 행위다. 19세기 제정러시아 때 유대인들에 대한 집단 약탈과 학살인 ‘포그롬(pogrom)’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나치 지배 아래에 있던 유럽의 유대인 묘지들은 파손됐다. 특히 1938년 11월 유대인들에 대한 약탈이 이뤄진 ‘수정의 밤’ 때도 유대인 묘지가 파괴됐다.
일련의 사건들은 트럼프 취임 이후 고개를 들고 있는 반유대주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트럼프의 반(反)무슬림 행보에 가려져 있지만, 그의 취임과 함께 기승을 부리고 있는 극우·인종주의가 반유대주의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21일 워싱턴 미국흑인역사국립박물관을 방문해 “우리의 유대인 공동체와 유대인 공동체 회관을 겨냥한 반유대주의 위협들은 끔찍하고, 고통스럽다”고 했다. 처음으로 미국 내 반유대주의를 비난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언급은 여전히 진실성을 의심받고 있다. 트럼프는 그간 증오 발언이나 극단주의와 명확하게 선을 긋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지난 16일 반유대주의 대책을 묻는 한 유대인 기자의 질문을 끊고, 그 질문은 공정하지 않으며 자신은 “세상에서 가장 반유대주의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대인단체인 ’상호 존중을 위한 안네 프랑크 센터’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가 전국적으로 중계되는 방송연설을 통해 반유대주의와 종교 차별을 반대해줄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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