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의 고뇌인가, 여전한 책임 회피인가.’
히로히토(裕仁) 일왕(1901~1989)이 만년에 ‘전쟁 책임’에 대해 신경쓰는 모습을 기록한 시종의 일기가 발견됐다고 23일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일기는 1974년부터 2000년까지 히로히토 일왕과 고준(香淳) 왕비의 시종으로 일했던 고바야시 시노부(小林忍)가 적은 것이다.
1987년 4월7일자 일기에 따르면 히로히토 일왕은 “일을 즐기고 오래 살아도 어쩔 수 없다. 괴로운 것을 보거나 듣는 일이 많아지기만 한다. 형제 등 가까운 이들의 불행을 만나고, 전쟁 책임의 일을 듣게 된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일기에는 “전날 저녁의 일”이라고 써 있다. 일왕이 그 전날인 6일 고쿄(皇居)에서 당직이던 고바야시에게 직접 말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황실의 사무를 담당하던 궁내청은 일왕의 부담 경감 대책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해 2월에는 일왕의 동생인 다카마쓰노미야(高松宮)가 사망했다.
일왕의 언급에 대해 고바야시는 “전쟁 책임은 극히 일부가 말할 뿐이고 국민 다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후의 부흥에서부터 오늘까지의 발전을 보면 이제 과거 역사의 한 장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경 쓰실 일 없습니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일기에는 당시 히로히토 일왕이 구체적으로 언제, 누구로부터 전쟁 책임을 지적받았는지에 대해선 기록돼 있지 않다.
다만 그해 3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공산당의 마사모리 세이지(正森成二) 의원이 “무모한 전쟁을 시작해 일본을 전복 직전까지 가게 한 것은 누구냐”고 일왕의 책임을 추궁했고, 이를 부정하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 康弘) 총리와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듬해 2월에는 모토시마 히토시(本島等) 나가사키(長崎) 시장이 “일왕의 전쟁 책임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는 등 일왕의 만년까지 전쟁 책임 문제는 여러 차례 논란이 됐다.
히로히토 일왕은 1987년 4월29일 생일 축하연에서 구토 증세를 보이고 자리를 떴다. 이후 건강을 일시 회복했으나 이듬해 9월 다시 피를 토하면서 쓰러진 뒤 1989년 1월7일 사망했다.
교도통신은 “이번 일기를 통해 일왕이 만년까지 전쟁 책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심정이 재차 부각됐다”고 평가했다. 도쿄신문은 “아시아 각국을 침략한 대일본제국을 이끌고, 태평양전쟁의 개전과 패전을 맞았던 일왕의 뇌리에 새겨진 기억이 말년까지 머리로부터 떠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왕의 이런 언급을 침략과 가해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로 곧바로 연결시킬 수는 없어 보인다. 히로히토 일왕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태평양전쟁에 대해 “군부와 의회가 전쟁 결정을 내렸고, 입헌 군주로서 재가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언급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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