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을 꼽으라면 ‘저출산고령화’와 ‘일손 부족’일 것이다.
일본 언론들의 관련 보도를 접하다 보면, 지금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웬만한 사회 현상들에 이 두 가지 문제가 깔려있는 게 아닌가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중소기업이나 오래된 가게가 문을 닫는 것도, 정부가 공무원 정년을 연장하고 ‘투 잡’을 허용하는 것도, 지방의회가 ‘직접민주주의’를 고민하는 것도 모두 다 저출산고령화와 일손 부족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일본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 인력을 더 받아들이기로 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5일 ‘2018년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을 내놓으면서 내년부터 외국인노동자 수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건설, 농업, 간병, 조선, 숙박 등 5개 업종을 대상으로 취업을 인정하는 새로운 재류자격을 내년 4월 신설하기로 했다. 금속프레스나 주물, 식품 등 일부 제조업에 외국인을 고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문직은 물론 단순노동직까지 사실상 개방하기로 한 것이다.
2017년 10월 현재 일본의 외국인 노동자 수는 127만명으로 추산된다. 일본 정부는 2025년까지 외국인 노동자 50만명을 더 받아들일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그간 외국인 노동자 수용에 소극적이었다. 1988년 각의에서 결정된 “단순노동자는 충분히 신중하게 대응한다(사실상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반면 이런 표면상의 입장과 달리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값싼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존재했고, 일본계 브라질인이나 외국인 기능실습생, 유학생들로 이를 메워왔다. 이런 임기응변식 대응으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손 부족이 심각해지자 방침을 전환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이민정책은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민을 받지 않으니까 ‘이민을 위한 정책’은 필요하지 않다고 강변하는 듯한 인상이다.
문제는 이런 ‘다테마에’(겉)와 ‘혼네’(속)가 모순되는 주장은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고, ‘우리’와 ‘외국인(이민)’ 간 격차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언젠가 돌려보낼 수 있는 ‘관리의 대상’으로 파악하고, 일본 사회의 구성원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인 노동자 수용 확대를 둘러싼 최근 논의는 주로 ‘일손 부족’에 직면한 산업계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의 사회통합정책에 대한 논의는 별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2월 “외국인을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원활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정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교육, 의료, 복지를 제대로 고민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과거 일본계 브라질인들이 일본 사회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처럼, 일본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 수용 확대에만 열을 올리지 ‘수용 이후’의 문제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더욱이 일본 사회에는 ‘루츠(Roots·선조)’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하다. 몇 세대에 걸쳐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적이나 조선적, 중국적을 가진 이들은 아직도 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헤이트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 혐오 발언)를 하는 것이 일부라고 하지만, 다수는 이를 묵인·방치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태도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자국의 ‘일손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편의주의이며, 배외주의가 더욱 쉽게 태동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비단 일본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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