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시민단체 야스쿠니 근처까지 촛불 평화 행진
·우익들, 욱일기 흔들며 “반일 일본인” “때려고치자”
“그 사람들은 한 마디로 테러리스트다” “일본을 빨갛게 물들이는 걸 절대 용서해선 안된다.”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 73년을 나흘 앞둔 지난 11일 저녁 6시30분 헌책방 거리로 유명한 도쿄(東京) 진보초(神保町) 사거리에 일장기와 전범기인 욱일기가 나부꼈다. 횡단보도 근처에 특공대 제복을 입은 이를 비롯, 우익으로 추정되는 이들 30여명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확성기를 이용, “반한 일본인은 일본에서 나가라” “때려 고치자”고 목청을 높였다. ‘일본을 파괴하는 테러리스트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이들이 기다리고 있던 것은 700m 떨어진 재일한국YMCA에서 오후7시 시작될 한 ‘촛불 행진’이다. 2006년부터 매년 8월 개최돼온 이 행사에선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신사에 반대하고 평화를 촉구하는 행진을 펼쳐왔다. 이날 행사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 야스쿠니신사 위헌소송 모임 등 한일 시민단체와 활동가 등이 참가한 촛불행동실행위원회가 주최했다.
오후 7시 한·일 시민 400여명이 YMCA 앞을 출발했다. ‘평화의 등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라는 플래카드가 대열 맨 앞에 섰다. 대열 주변을 경찰들이 둘러쌌다.
참가자들은 LED 촛불을 들거나 형광띠를 손목에 두르고 “야스쿠니 노(No), 평화 예스(Yes)”라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야스쿠니 반대” “합사(合祀) 반대” “전쟁 반대” “평화를 지키자” 등의 구호도 잇따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군국주의와 역사수정주의에 반대한다”면서 “아베는 그만둬라”는 구호도 나왔다.
행진 대열이 진보초 사거리로 향하는 큰 길로 접어들자 주변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확성기를 어깨에 멘 이들이 대열을 향해 “일본에서 나가라”고 주장했다. 대열을 따라오면서 “너희들 뭐냐” “잘난 체 말라”고 고성을 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대열이 진보초 사거리를 지나가자 우익 세력들의 방해는 더욱 거칠어졌다. 이들은 일장기와 욱일기를 함께 흔들면서 “반일 일본인은 일본에서 나가라” 같은 구호를 외쳤다. ‘매국노,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반역 단체에 정의의 철퇴를’ 등의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태극기를 찢기까지 했다. 행진 대열을 향해 돌진하려다가 경찰에 제지당한 이들도 있었다. 한 참가자는 “우익들의 방해와 위협은 매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30여분에 걸친 이날 행진은 빌딩들로 둘러싸인 한 공원에서 마무리됐다. 이때까지도 우익들은 소란을 멈추지 않았다.
우치다 마사토시(內田雅敏) 촛불행동실행위원회 공동대표는 “야스쿠니신사는 전쟁이 정당하다는 역사관을 여전히 갖고 있고, 이런 신사에 정치가들이 참배해선 동아시아 평화는 오지 않는다”면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야스쿠니의 이데올로기를 부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 주최 측은 참가자들에게 우익들의 눈에 띌 수도 있으니 조심해서 돌아가라고 당부했다.
행사가 끝난 공원에서 야스쿠니신사까지는 700m도 채 되지 않았다. 야스쿠니신사는 일왕을 정점으로 한 국가 신도(神道)의 중심으로 침략 전쟁 중에 전사한 군인들을 신으로 모시며 전쟁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야스쿠니신사에는 전쟁 중 희생당한 조선인 2만1000명이 합사되어 있고, 희생당한 가족의 이름을 빼달라는 한국 유족들의 요구를 지금까지 묵살하고 있다.
매년 8월15일이 되면 야스쿠니신사는 과거 제국주의 시절을 그리워하고 침략 전쟁을 부인하려는 보수·우익 세력들의 중심으로 다시 떠오른다. 아베 총리는 매년 야스쿠니신사에 공물료를 납부해왔고, 국회의원들은 대거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이날 야스쿠니신사 경내에는 욱일기를 흔들거나 일제시대 군복을 입고 칼을 찬 이들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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