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돗토리( 鳥取)현 다이센(大山)정은 주고쿠(中國) 지방 최고봉(1709m)인 다이센(大山) 기슭에 위치해 있다. 동해(일본해)와도 접해 있다. 인구 1만6000명의 시골 소도시지만, 최근 도시에서 이주하려는 이들이 살고 싶어하는 지역으로 주목을 모으고 있다. 다이센에서 내려오는 물을 근원으로 하는 풍부한 자연을 갖춘 데다,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이주자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지자체와 이주·정착을 돕는 마을 공동체들의 노력들이 더해지면서다.
지난 2일 만난 나카무라 다카유키(中村隆行·44)는 그런 이주자 가운데 ‘고참’에 속한다. 도쿄(東京) 인근 사이타마( 埼玉)현 출신으로 음식업계 등에서 일하다가 26세 때인 1999년 다이센으로 이주해왔다. 직업은 ‘스모구리’ 어부. 잠수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바닷속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남성판 ‘해녀’다. 다이센에서 ‘스모구리’ 어부를 모집하는 것을 알고 이주를 결행했다. 매일 오전 마을 앞바다에서 전복, 소라, 미역 등을 채취해 전국으로 배송한다.
생업 외에 그가 힘을 쏟고 있는 것이 ‘기즈키회’ 활동이다. 기즈키회는 이주·정착 지원과 지역 활성화를 목표로 2012년 마을의 젊은 이주자들이 만든 단체다. 구성원들은 목수, 의사, 아티스트, 물리치료사, 친환경농업가, 가수, 디자이너, 카페 주인 등 다양하다. 2년 전 이곳에 정착해 올해 개산(開山) 1300년을 맞은 다이센지(大山寺) 앞에서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를 파는 젊은이도 있다. 나카무라는 “이주할 때도 그랬고, 이주 뒤 집에 화재가 났을 때도 많은 분들이 도와줘서 그 은혜를 갚고 싶었다”며 “조금이라도 미소를 짓고 지낼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기즈키회의 거점이자 지역 주민들의 교류 중심지가 ‘마부야’다. 1928년 지어져 병원으로 사용되다가 20년 가까이 빈집으로 있던 것을 개보수해 2013년 문을 열었다. ‘1일 점장’이 돼 자신만의 메뉴를 선보일 수 있는 카페, 창고를 개조한 갤러리, 예술가들이 머물 수 있는 방들을 갖추고 있다. 기즈키회는 이곳에서 고민가(古民家)의 재생·보존, 예술가 레지던스 프로그램, 육아·곤카츠(婚活·결혼활동) 지원, 애니메이션 축제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기즈키회 부대표로 애니메이션 축제 등을 기획하고 있는 오시타 시호(大下志穗)는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면서 이주민들과 지역민들 간 유대가 깊어지고, 모두들 동료가 됐다”고 전했다.
기즈키회가 특히 주력하고 있는 것이 이주·정착 지원이다. 이주자의 정착에 중요한 것은 현지 주민과의 관계와 네트워크 형성이다. 나카무라는 “이주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웃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남 탓을 했다”고 했다. 기즈키회는 현지 주민 조직인 ‘야라이야 오사카’와 함께 이주자의 집 보수 등을 지원하고, 이주지원센터를 통해 이주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다이센정에는 기즈키회 같은 이주자 공동체가 10개 정도 있다. 이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주자에게 맞는 곳을 소개하는 일도 한다. 공동체들의 지원이 뒷받침되면서 다이센정은 이주자의 정착률이 높고, 최근에는 20~30대 이주자들도 늘고 있다. 도시 젊은이들이 지역 활동을 체험토록 국가가 지원해주는 ‘지역부흥협력대’를 졸업한 뒤 아예 남는 사람들도 있다. 오시타는 “물과 음식이 맛있어서 먹는 데 곤란하지 않다”면서 “육아 지원도 잘 되서 아이들을 구김살없이 자라게 하고 싶은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 젊은이들이 늘어난 것도 다이센정이 이주지로 주목받는 이유다.
2013년 마부야가 생긴 뒤 140명 정도가 다이센정으로 이주해왔다. 기즈키회와 상담을 통해 이주해오는 이들은 매년 10세대 정도다. 나카무라는 “과거 ‘농촌생활 붐’이 일어났을 때 정주율이 50% 정도였지만 다이센정의 이주자 정주율은 85% 정도”라면서 “마을 사람들이 이주자의 정착을 위해 보조해주는 게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다이센정을 포함하고 있는 돗토리현은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인구가 가장 적다. 인구 감소와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지역 소멸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 다이센정만 해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9%다. 이대로 두면 생산가능인구는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돗토리현은 육아세대인 40세 미만 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보육료 무상화 등 대담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주지원창구를 비롯해, 빈집 개축 보조금 제도, 시험이주주택 제공, 농업 종사시 첫 월급 제공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조금씩 결실을 맺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돗토리현 이주자수는 약 4000명으로 전국 1위다. “살고 싶은 시골” 랭킹에서도 2016년도부터 2년 연속으로 돗토리현의 마을이 전국 1위에 올랐다.
기즈키회 대표인 목수 기타무라 유쥬(北村裕壽)는 “지난 10년 간 일본에 다양한 재해들이 일어나면서 젊은 세대들 가운데서도 환경이나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이주자는 더 늘 것”이라고 말했다. 오시타는 “누군가에 바로 전화하면 바로 와서 도와준다”면서 “돈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연결로 뭐든 해결할 수 있다. 그게 이주자에겐 최고의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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