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도쿄 롯폰기 미드타운에 있는 산토리 미술관을 찾았다. 딱히 미술에 조예나 관심이 깊은 건 아니지만, 이곳을 찾아야할 이유가 있었다. 우연일 지 모르지만 한 권의 책이 계기가 됐다.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요나하라 케이 지음, 임경택 옮김. 사계절출판사).
일본 현대사 책을 찾다가 약간 망설이면서 샀던 책이다. ‘슈리성 복원기’라는 설명에 좀 어떨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은 금세 바뀌었다.
과거 오키나와 류큐왕국(1429~1879년)의 상징인 슈리(首里)성은 1945년 일본군과 미군의 전투에서 소실됐다가 1992년 복원됐다. 전쟁으로 파괴됐던 슈리성을 되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가마쿠라 요시타로가 남긴 방대한 조사 자료였다.
책은 1921년 오키나와를 처음 찾은 이후 류큐 문화 전반을 폭넓게 조사했던 가마쿠라와, 그와 교류했던 오키나와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오키나와의 역사와 문화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그런데 책에서 오키나와의 전통 염색천 ‘빈가타(紅型)’, 역대 류큐 왕의 초상화인 '오고에(御後繪)' 등 낯선 단어들을 만나면서 실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차에 산토리 미술관에서 지난 18일부터 오는 9월2일까지 ‘류큐-미의 보고’ 전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1961년 개관한 산토리 미술관은 1970년대부터 류큐 관련 전시회를 잇따라 개최하고, 가마쿠라가 보관하고 있던 류큐 관련 자료 복원을 후원하는 등 류큐 문화 부흥에 일조를 한 곳이다(책에 따르면 이는 산토리가 일본 본토를 앞둔 오키나와의 주류 시장에 진출하려던 목적도 있었다).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한 가마쿠라 요시타로는 23세이던 1921년 오키나와 문화 예술을 조사하기 위해 처음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이후 그는 1936년까지 오키나와 본도와 미야코, 야에야마, 아마미 등 인근 섬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류쿠의 예술과 문화, 역사, 종교 등을 폭넓게 조사했다. 지금 ‘가마쿠라 자료’로 남아 있는 것은 81권의 필드노트와 수많은 고문서의 필사본과 복사본, 1236장의 사진용 유리 건판, 1269매의 인화 사진, 빈가타 형지 1114점 등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마쿠라가 오키나와를 다시 찾은 것은 35년이 지난 1971년 봄이었다. 그 사이 오키나와는 전화에 휘말리는 등 비극의 희생양이 됐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본토의 방어선 역할을 한 탓에 지상전이 벌어지면서 인구의 4분의 1이 희생됐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군 통치를 받았고, 1972년 일본에 ‘반환’됐다.
가마쿠라의 발자취를 쫓던 책은 전쟁으로 향해 달려가는 일본의 분위기와 전쟁터로 변하면서 비극이 끊이지 않았던 오키나와의 모습도 놓치지 않고 그려낸다.
가령 이런 대목.
“전쟁은 세상을 한꺼번에 검정색으로 칠해버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변한다. 언제부터인가 회색의 일상에 익숙해지고,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더라도 어느새 내성이 생겨버린다. 눈이나 귀를 찌르는 위협적인 말조차 익숙해지는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일본인은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입을 다물고, 이 이상한 시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21세기인 지금 또 한 번 전쟁의 시대가 찾아온다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
산토리미술관은 쇼핑가로 유명한 미드타운 3, 4층에 있다. 전시는 4층으로 올라가 3층으로 내려오면서 보게 돼 있다. 4층 전시장을 들어가자마자 만나게 되는 게 빈가타. 용이나 새, 꽃, 기하학적 무늬 등이 화려하게 염색된 19세기 류큐 시절의 의복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류큐 왕국 붕괴와 전쟁 등으로 명맥을 잃어가던 빈가타 제조법은 가마쿠라가 과거 모아놓은 자료 등을 통해 부흥의 길을 걷게 됐다. 1948년 빈가타를 부흥시키려던 오키나와 사람들이 도쿄로 가마쿠라를 찾아왔고, 가마쿠라는 지금까지 수집한 빈가타 형지를 오키나와에 반환하고, 과거 자신이 배웠던 오키나와 염색 기법을 가르쳐줬다.
빈가타 다음으로는 오키나와에 드물게 남아 있는 회화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과거 중국과 일본 양쪽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한 류큐 회화들이다.
이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에도 막부에 진상품으로도 보내졌던 나전칠기를 중심으로 한 공예품이 전시돼 있다. 특히 국보이기도 한 류큐 왕족 쇼(尙)씨 관계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완벽하게 재현해낸 화려한 왕관은 볼 만하다. 한쪽 벽면에는 과거 류큐 왕이 죽은 뒤에 그린다는 ‘오고에’가 한 점이 걸려 있다. 이것도 가마쿠라가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다.
전시실을 나가기 전, 가마쿠라의 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글과 그림이 촘촘하게 적힌 ‘필드 노트’.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90여년 전 가마쿠라가 찍었던 퇴락한 정전(正殿)과 슈레이문(守禮門) 등 슈리성 일대의 모습들. 류큐 왕국이 붕괴된 지 40여년이 지나면서 슈리성은 거의 폐허가 되어 있었다. 일본 정부는 1923년 슈리성 정전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철거를 막아냈던 것도 가마쿠라다.
책의 부제는 ‘가마쿠라 요시타로와 근대 오키나와의 사람들’이다. 책은 단순한 슈리성 복원기가 아니라 전통과 문화를 지키고 이어가려고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담으면서 류큐와 오키나와가 걸어온 고난의 길을 담아냈다.
5년 전 오키나와를 여행갔던 적이 있었다. 날씨가 더웠던 탓도 있었지만 주택가 위에 서 있던 슈리성에 큰 감흥을 느끼진 못했다. 이 책을 읽고, 그리고 전시회를 보고 나서 슈리성을 다시 찾고 싶어졌다.
과거 ‘슈리성으로 가는 언덕길’의 모습은 달랐다고 한다.
“성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치 왕을 따르는 것처럼 완만한 경사가 펼치지는 언덕 위로 도시가 모습을 드러낸다. 붉게 장식된 슈리성이 하늘에 비치고, 몇 개의 성문, 수많은 사원, 왕부의 시설, 우간주, 그리고 왕가나 사족들의 저택이 이어져 있다.”
“언덕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저택들 사이사이로 푸른 바다가 언뜻언뜻 비치니 얼마나 아름다웠겠는가?...길가에는 강한 남국의 향기를 내뿜는 꽃이 피어 있다. 슈리는 새가 지저귀고 아련한 아지랑이에 휩싸인 우유 빛깔의 아침해, 오렌지색으로 뒤섞인 석양, 무서울 정도로 빛나는 금빛 달에 시시각각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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