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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통신

[도쿄 부라부라]'서민들의 도쿄'를 맛볼 수 있는 곳, '야네센'

모처럼 도쿄 지역을 ‘부라부라’(어슬렁어슬렁)
우에노 공원 위쪽을 감싸듯이 자리잡은 야네센(야나카+네즈+센다기) 지역.

한 달 전 도쿄에 왔던 후배가 준 사사키 조의 미스터리 소설 <경관의 피>를 읽고나서 한 번쯤 가보고 싶던 곳이다.
소설은 1948~2007년을 시대 배경으로 격동의 일본 근현대사를 살아간 경찰관 3대(代)의 이야기인데, 이들 가족이 근무하고 사는 곳이 우에노와 야나카 지역이다.
소설 속에서 묘사됐지만 이 지역은 태평양 전쟁 당시 공습 피해를 거의 당하지 않아서 아직까지 예전 모습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전후에는 우에노 공원을 중심으로 부랑자들이나 전쟁 고아들, 폭력배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이기도 하다. 도쿄 서민의 생활 풍경이 많이 남아 있고, 최근에는 아기자기한 카페나 빵집 등도 생겨나고 있다. 작가 사사키 조도 야나카에서 창작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도쿄의 ‘레트로’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그 루트를 따라 ‘부라부라’ 시작하기로.

JR 닛포리역 서쪽 출구로 나와 고텐자카라는 야트막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간다. 슬슬 관광객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센베 가게, 절임 가게, 오래 되어 보이는 사찰을 지나가면 야나카의 상징인 ‘유야케 단단’이라는 계단이 곧바로 보인다. 이곳에서 보는 석양(유야케)이 아름답다고.

 

계단 밑에서부터 상점가인 ‘야나카 긴자’가 이어진다. 전통과자 가게에서부터 사탕 가게, 차 가게, 채소 가게, 램프 가게, 그리고 100엔숍까지. 다양한 가게들이 몰려 있다. 
야나카는 고양이 마을로도 유명해서 야나카 긴자에는 고양이를 테마로 한 가게가 많다. 그러고 보니, 야네센을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꽤 오래됐다.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만화 <야나카 산책>을 3년 전쯤인가 봤으니까.


사실 야나카 긴자에서 제일 눈에 띄었던 건 에치고야라는 주류 가게였다. 가게 앞에서 따뜻하게 데운 정종과 굴을 팔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옆에 죽 늘어선 술 박스 위에 앉아 한 잔 술을 즐기는 모습이 꽤 구미가 당겼다. 쌀쌀한 겨울에 낮술도 꽤 좋긴 한데.

 

야나카긴자를 빠져나와 네즈신사 쪽으로 걸어간다. 앞서 만화 <야나카 산책>에서 주인공 고양이가 자주 찾는 곳 중 하나. 일본 중요문화재라는 건 가서 알았다.
그런데 본전에 다가갈수록 심상치 않은 환성들이 들려왔다. 본전 앞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왜 이렇게 많나 싶었더니 세쓰분(節分·입춘 전날)을 맞아 악귀를 쫓는 콩 뿌리기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날(3일)이 세쓰분이었구나. 콩(뿐만 아니라 과자, 귤, 붕어빵, 수건, 휴지 등) 받으려고 대형 종이봉투나 비닐봉지 갖고온 아이·어른들로 가득하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행사가 벌어졌다.


떠들석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본전 옆으로 돌아가니 사람 키보다 조금 큰 붉은 색 도리이가 길게 늘어서 있다. 네즈신사는 도쿄대 혼고 캠퍼스와 일본의과대부속병원 사이에 있다.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형의 아들 이에노부로 쇼군을 잇게 하기로 결심했을 때 이에노부가 태어난 이곳에 네즈신사를 크게 조영했다고 한다.
지금이야 조용한 분위기지만 예전에는 에도 시대 유수의 비공인 유곽이 있었다고 한다. 네즈신사를 만들 당시 목공 등 일꾼들을 상대로 하는 술집들이 생겨난 게 계기였다. 근처에 도쿄대가 생겼을 때 학생들도 이곳을 자주 찾게 되면서, 문부성은 도쿄대의 지바로의 이전까지 검토했지만, 결국에는 유곽이 현재의 고토(江東)구로 이전하게 됐다고 한다.

 

네즈신사를 나와 다시 닛포리역쪽으로 간다. 일부러 골목길을 지나갔는데 2층짜리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이 적지 않다. 언덕 쪽으로 올라가니 고양이 가게 또 발견. 묘지를 끼고 있는 사찰들도 많이 보였는데 나중에 이 지역 안내지도를 보니 어림잡아 30~40개의 절이 있는 것 같다. 골목길을 걷다 보니 매화꽃이 이미 피어있다. 그러고보니 도쿄 남쪽의 아타미에 있는 매화원은 이미 매화 축제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

 

다이묘 시계 박물관이라는 곳을 곁눈질로 보고 다시 큰 길 쪽으로 나와 걸었다. 사람들이 십여 명 줄지어 서있는 가게와 만났다. 사전 정보 없이 갔던 터라 이곳이 ‘카야바 커피’라는 오래된 커피점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됐다. 도쿄 곳곳(주로 레트로한 느낌의 서민 거리)을 소개한 일본 드라마 <도쿄 센티멘탈>에도 나온 적이 있다. 이 가게의 명물은 에그 샌드위치라고 한다. 
가게 맞은 편에 있는 시타마치풍속자료관 부설 전시장. 요시다라는 예전 술 가게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전시장 앞 벤치에 앉아 겨울의 오후 햇살을 잠시 쬐었다. 

 

그나마 사전에 알아본 ‘우에노사쿠라기 아타리’라는 곳이 마지막 목적지다. 1938년 세워진 고민가를 개조해 베이커리, 비어홀, 올리브유 가게 등으로 재개장한 복합 시설이다. 가게 안의 카야바 베이커리는 앞서 카야바 가게의 자매점이라고 한다. 감자빵과 베이컨빵-이름이 기억 안남-을 하나씩 샀다. 

 

우에노사쿠라기 아타리를 나와 5분 정도 걸어가면 도쿄예술대 쪽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국립박물관, 도쿄도미술관, 동물원 등이 모여있는 우에노 공원. 쌀쌀한(서울에 비하면 그래도 5도 넘게 높다) 날씨에도 사람들이 꽤 많다.
우에노공원의 벚꽃나무길을 지나간다. 나무들은 벚꽃 느낌의 일루미네이션 장식들을 하고 있다.

 

옆으로는 시노바즈이케라는 연못이 있다. 연꽃이 유명한 곳이라는데, 시든 연꽃 줄기들만 누렇게 펼쳐져 있어 황량한 느낌마저 준다. 여담이지만, <경관의 피>에서 우에노 공원에서 전쟁고아들과 함께 지내던 ‘미도리’라는 미소년이 시체로 발견되는 곳이 이곳이었다. 소설 속 시기가 11월이었으니 꽤 으스스했을 듯하다.


 
우에노공원을 나와 오카치마치 쪽으로 내려갔다. 이곳에는 재일코리안들이 하는 야키니쿠 가게들이 제법 모여 있다. 주말이라 그런지 예약이 가득차 있다. 아차 싶었지만 별 수 없다. 그래도 모처럼 나온 외출이니 야키니쿠 체인점에서 저녁을 떼우고 ‘고잉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