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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헤이트스피치법 2년... 멀기만 한 차별 철폐의 길

 “사는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협하면 침묵한다’ ‘협박하면 삶을 포기하도록 할 수 있다’ ‘차별에 대한 비판을 틀어막을 수 있다’라는 성공사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죽어라’ ‘없어져라’는 말을 듣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재일동포 3세 최강이자(44)씨는 지난달 24일 가나가와(神奈川) 현 가와사키(川崎)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최씨는 혐한(嫌韓) 발언과 시위로 겪은 피해를 적극적으로 알려온 인물이다.
 3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가와사키경찰서는 지난달 18일 트위터 글로 최씨를 협박한 우익 남성(50)을 불구속 입건했다. 최씨가 고소했다. 이 남성은 2016년 8월과 지난해 4~5월 트위터에 최씨의 실명을 거론하며 “조선은 죽어라” “손도끼를 사올 예정” “인종주의자가 칼을 살 거니까 신고하도록” 등의 글을 올렸다.
 최씨는 “고소를 한 뒤에도 공격은 계속됐다. 인터넷만이 아닌 진짜 협박에 몰렸다”고 전했다. 일터로 “조선인은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전화가 걸려왔고, 바퀴벌레 사체가 배달되기도 했다. 그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주말에도 함께 지낼 수 없었다. 집을 나오면 떨어져 걸었고, 목욕탕이나 영화관에도 갈 수 없었다”면서 “헤이트스피치법이 있어도 당사자가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 억제법이 3일 시행 2년을 맞았다. 하지만 혐한 시위는 그치지 않고, 인터넷상의 차별 선동은 사실상 방치 상태다. 일본 정부의 홍보 활동도 시행 당초에 비해 굼뜨다. 헤이트스피치억제법이 처벌 조항이 없는 ‘이념법’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만큼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헤이트스피치법은 일본 외 출신자 등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을 없애기 위해 2016년 6월3일 시행됐다. 심각한 인종차별 자체를 부정하던 일본 정부가 처음 내놓은 대책이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평가받았다. 하지만 처벌 조항이 없고, 거리 선전이나 인터넷에서의 헤이트스피치를 규제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지난 20일 도쿄 신주쿠(新宿)에선 ‘일·한 단교(斷交) 대행진’이라는 명목의 혐한 시위가 진행됐다. 약 50명의 참가자 일부는 “한국인은 적이다” “자이니치(在日)는 범죄의 온상. 한국에 돌아가라”고 연호했다.
 경찰에 따르면 우익계 시민단체의 시위는 지난해 7월부터 올 4월까지 38건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의 40건과 같은 수준이다. 모로오카 야스코(師岡康子) 변호사는 도쿄신문에 “법 시행 초기엔 헤이트스피치 시위 참가자들도 경계했지만, 이념법의 한계가 뚜렷해지면서 차별 선동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상은 더욱 심각하다. ‘사형’ ‘살처분’ 같은 표현이 넘쳐나지만, 가해자를 특정하거나 책임을 추궁하기 어렵다. 법무성이 인터넷사이트 운영회사에 차별적인 글의 삭제를 요청한 일도 있지만, 강제력은 없다. 독일의 경우 운영회사에 가짜 뉴스와 헤이트스피치의 신속한 삭제를 의무화, 위반할 경우 최대 50만 유로(약 6억2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지자체들의 의지도 미흡하다. 오사카(大阪)시는 2016년 전국 최초로 헤이트스피체 억제 조례를 만들었지만, 가해자의 실명 공표에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 가와사키시도 지난 3월말 시영 시설에서 헤이트스피치가 일어날 우려가 있는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최근 헤이트스피치를 반복해온 극우 인사의 시설 사용 신청을 ‘불허가 요건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사실상 승인했다.
 헤이트스피치법이 한계를 보이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로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대상을 ‘적법하게 거주하는 외국인’에 한정하고 있고, 헤이트스피치만 다루고 있다는 점도 한계다.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 등 일본 국내의 소수자나 비정규직 체제의 외국인은 제외된다. 유엔은 일본 정부에 헤이트스피치 외에도 부동산 임대나 취업, 교육 등의 분야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 제정을 권고해왔다. 일본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실효성 있는 대책과 함께 포괄적인 인종차별금지법의 제정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