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골든 위크’ 연휴였던 지난 3일 도쿄 아다치(足立)구의 한 점포 앞은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지역 특산품이나 ‘폭탄세일’ 상품을 사려는 게 아니다. 이들이 서 있는 곳은 수제(手製) 란도셀(일본 초등학생용 책가방) 가운데서도 인기가 높은 나카무라(中村)가방제작소 매장이다. 최고 8만8000엔(약 86만원)이나 하는 란도셀을 구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년 4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위해 란도셀을 구입하려고 동분서주하는 ‘란카쓰’의 일환이다.
‘란카쓰’는 란도셀의 ‘란’과 활동을 뜻하는 ‘카쓰’(活)를 합한 용어다. 슈카쓰(就活·취업 활동), 곤카쓰(婚活·결혼 활동), 슈카쓰(終活·죽음 준비 활동), 호카쓰(保活·보육원 찾기 활동) 등에 이어 최근 새로운 유행어로 등장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구매 행위를 ‘란카쓰’로 부르면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란카쓰 시기가 매년 빨라지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이면서다. 내년 초등학교 입학 예정인 아이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선 “아이가 유치원 넨초(年長·한국 나이 7살)가 되자마자 란카쓰가 시작됐다”라는 비명들이 나오고 있다. 나카무라제작소 측은 “2016년에는 제품이 7월말에 품절됐지만, 작년에는 7월 2일로 빨라졌다”면서 “올해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케이신문 조사에 따르면 2014년에는 6월부터 란도셀 구입(예약)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4월부터 ‘란카쓰’가 활발해지다가 8월에는 구입예정자의 50% 이상이 란도셀을 구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란카쓰’의 과열 배경에는 저출산이 놓여 있다. 자녀나 손자 수가 감소하면서 아이 1명에게 드는 비용은 오히려 늘어났다. 아이에 드는 돈이 부모와 아버지, 외조부모 등 총 6명의 지갑에서 나온다는 ‘식스 포켓(Six Pocket)’화다. 특히 초등학교 입학은 아이의 인생에서 처음 맞는 중요한 시기로 불리는 만큼 ‘식스 포켓’의 대형 이벤트인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 아이·손주에게 최고의 란도셀을 사주기’ 위해선 초등학교 입학 1년 전부터 ‘란카쓰’를 하는 상황이 됐다. 인터넷을 통해 지방 란도셀 공방의 정보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앞당겨서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반면, 유명 수제 란도셀은 대량 생산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 고급 브랜드의 경우 예약 개시일부터 주문이 쇄도해 홈페이지 서버가 마비되거나 전시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는 경우가 흔하다.
란도셀의 다양화도 ‘란카쓰’ 과열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형 제조회사나 양판점에서 대량 생산된 란도셀을 사는 것도 가능하지만, 인기 있는 색상이나 디자인의 경우 제조량이 한정돼 있어 일찌감치 품절되는 경우가 많다.
제조업체들도 판매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대형 란도셀 제조업체는 4월이나 5월에 신작 발표나 예약 판매를 시작한다. 일본 란도셀시장 점유율 1위인 세이반은 지난 3월 30일부터, 쓰지야가방제작소는 4월 18일부터 2019년도 란도셀을 판매하고 있다. 대형쇼핑센터나 백화점에선 란도셀 판매장이 설치돼 ‘조기 구입시 할인’ 등의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5월 들어 백화점들도 란도셀 판매장을 늘리면서 수도권에선 일찌감치 란도셀 판매 경쟁이 절정을 맞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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