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31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시의 공동주택 ‘소셜하임’에서 화재가 발생, 40대부터 80대의 남녀 11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소셜하임’은 빈곤층의 자립을 지원하는 시설로, 입주자는 경제적으로 곤궁하거나 돌봐줄 친인척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8월에는 아키타현 요코테시의 맨션 ‘가테야미나미초 하이츠’에서 화재가 발생해 50~70대 입주자 5명이 숨졌다. 사망자는 모두 중·고령의 독거 남성들이었다.
앞서 지난해 5월엔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의 맨션 ‘나카무라소’가 전소해 50~80대 6명이 숨졌다. 나카무라소는 임대료를 하루씩 내고 살 수 있는 곳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이나 생활보호를 신청한 노숙자들이 머무르는 장소로 이용했다고 한다.
3건의 화재에서 공통되는 것은 피해자들이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독거 노인들이었다는 점이다. 화재가 발생한 곳은 모두 낡고 오래된 목조 건물이었다. ‘소셜하임’은 원래 3층짜리 목조 여관 건물을 개조한 것으로, 1층과 2층에 10㎡ 정도의 개인실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불이 빨리 번져 몸이 불편한 고령자들이 대피하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소셜하임’ 참사 한 달여를 맞아 일본 언론들은 이번 사고가 ‘방재선진국’ 일본의 방재·피난 대책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소셜하임’이 스프링쿨러 설치가 의무화되는 시설에 포함되지 않은 점을 들어 법의 ‘사각(死角) 지대’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독거·빈곤 문제 등 초고령사회를 맞은 일본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배경으로 드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화재가 발생한 3곳은 모두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독거노인이나 빈곤층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일본에선 2000년대 들어 비영리법인(NPO)을 중심으로 빈곤층의 생활보호자 신청을 지원하는 활동이 활발해졌다. 하지만 복지 행정은 이들을 받아들일 곳을 정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열악한 주거 환경에 고액의 이용료를 징수하는 ‘빈곤 비즈니스’ 시설이 생겨나게 됐다. 행정 측도 빈곤층들이 살 수 있는 공영주택을 줄여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NPO 등은 직접 건물을 확보해 빈곤층에게 거처를 제공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자금력에는 한계가 있어 활용할 수 있는 건물은 노후화된 목조 건물이 대다수였다.
일본에선 독거 노인들이 집을 빌리기란 쉽지 않다. 집주인들이 ‘고독사’ 등을 우려해 집을 빌려주길 꺼리기 때문이다. 결국 재해에 가장 취약한 곳에, 재해에 가장 취약한 사회적 약자가 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소셜하임’을 운영하는 업체 대표는 화재 직후 “스프링쿨러를 설치할 여력이 안됐다”며 고개를 숙였다. ‘소셜하임’은 유료노인홈이나 무료저가숙박소에 해당되지 않아 스프링쿨러 설치 의무가 없었다. 스프링쿨러를 설치하려 해도 수천만원의 비용이 든다. 지금까지의 ‘선의’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생활보호 급여자 2명 이상이 이용하고, 법적 지위가 없는 시설이 2015년 6월 현재 전국에 1236곳이 있다.
최근 일본에선 추위로 인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실내 동사(凍死)’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노인 고립과 빈곤 문제가 배경인 것으로 분석된다. ‘소셜하임’ 사고가 정부의 규제 강화로만 끝날 게 아니라, 노인·빈곤 문제 측면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소셜하임 사고 같은 화재 참사가 발생하면 여론은 떠들석해지곤 한다. 하지만 빈곤 노인의 고독사에 대해선 그 정도 반응이 없는 것은 왜일까. 비단 일본에만 해당되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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