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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김진우의 도쿄 리포트

관료들의 봄

 

 ‘일본 관료 세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최근 한 달 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을 흔들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한때 일본을 떠받친다고까지 얘기됐던 관료 세계의 혼란과 해이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우선 모리토모(森友)학원에 대한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을 둘러싼 재무성의 문서 조작. 아베 총리 측이 헐값 매각이나 문서 조작에 관여했는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두드러지는 점은 의혹이 제기된 당시 담당 국장이던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전 국세청 장관을 필두로 재무성 관료들이 정권 옹호에 필사적이었다는 것이다. 사가와가 국세청 장관에 임명된 것도 이런 ‘충성심’을 평가받은 덕분이라는 해석이 많다. 그런데 문서조작 사건이 터지자 상황이 180도 뒤집혔다. 아베 정권은 “최종 책임은 사가와”(아소 다로 부총리)라면서 재무성 관료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사가와는 ‘꼬리 자르기’ 대상으로 전락했다.
 또 하나의 ‘사학 스캔들’이었던 가케(加計)학원 특혜 의혹은 다른 양상이다. ‘총리 의향’이라고 적힌 문부과학성(문부성) 문서가 공개된 데 이어 마에카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성 사무차관도 “총리 관저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마에카와는 ‘데아이케(만남)바’ 출입 보도 등으로 부도덕한 인물로 낙인찍혔다. 최근에는 문부성이 마에카와의 중학교 강연내용을 뒷조사했고, 친아베 성향의 자민당 의원 2명이 이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권에 반기를 든 사람은 끝까지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듯한 모습이다. 앞서 사가와 건과 비교하면 정권에 충성해도 잘리고, 정권에 반항해도 잘린다.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시계를 조금 더 앞으로 돌리면 아베 정권 추락의 신호가 된 재량노동제 데이터 조작 문제가 있다. 아베 총리는 “재량노동제 노동자의 근무시간이 일반 노동자보다 짧다는 자료도 있다”고 답변했지만 전제조건이 다른 데이터를 비교한 자료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주무부처인 후생노동성이 잠깐만 조사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을 실수한 것을 두고 ‘과잉 충성’에 눈이 먼 탓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지만, 의도적인 사보타지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일련의 사건들을 지난해 유행어였던 ‘손타쿠(忖度)’ 문제로 해석하는 시각들이 많다. 관료들이 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기었다는 것이다.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일단 감추고 보는 관료 집단의 구조적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이런 난맥상의 배경에 5년 넘게 이어진 아베 ‘1강 체제’의 부작용이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베 정권은 2014년 내각인사국을 신설해 관료들의 인사권을 장악했다. 이에 따라 관료들이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총리관저의 뜻대로 알아서 움직이게 됐다는 지적이다. ‘손타쿠’ 구조의 정점에 총리가 있는 셈이다. 일련의 사건에서 보이듯 아베 정권은 관료들을 정권을 지키는 도구로 생각한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고 적대시한다. 자민당 와다 마사무네(和田政宗) 의원은 지난 19일 국회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오타 미쓰루(太田充) 재무성 이재국장이 민주당 정권 시절 총리 비서관을 역임했던 점을 들면서 “아베 정권을 깎아내리려고 의도적으로 이상한 답변을 하는 것 아니느냐”라고 질문했다.
 철학자 우치야마 다카시(內山節)는 근대 정치의 병리로 ‘독재정치’를 낳는 불완전한 대의민주주의와 관료제 문제를 들었다. 정치가는 선거가 끝나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 정치가 밑에서 관료들은 자기보신에 몰두한다. 그 속에 주권자에 대한 공복(公僕) 의식은 없다. 지금 총리 관저 앞에서, 도쿄와 오사카, 나고야 등지에서 울려퍼지는 함성은 바로 그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훼손된 데 대한 분노에 다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