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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로마 시내에 ‘교황 비난’ 벽보가...가톨릭 보-혁 갈등 부른 ‘몰타 기사단’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시내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난하는 의문의 벽보들이 붙었다. 진보적 입장을 취해온 교황에 대한 가톨릭 내 보수세력의 반격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3일 밤부터 4일 새벽 사이 바티칸 주변과 로마 시내 몇몇 지역에 굳은 표정을 한 교황의 얼굴 사진과 함께 “당신의 자비는 어디 있느냐”는 구호가 쓰인 벽보들이 나붙었다. 이 벽보들을 누가 붙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몰타기사단의 참수”라고 표현한 사건을 비롯, 교단 내 보수파를 겨냥한 교황의 개입 행위들을 비난한 것으로 미뤄 가톨릭 보수파 측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벽보는 “프란치스코, 당신은 신자들을 차지하고, 사제들을 제거하고, 몰타기사단을 참수하고, 추기경들을 무시했다”고 비난했다.
 벽보에서 언급된 사건은 가톨릭 조직 몰타기사단이 미얀마에서 콘돔을 배포하면서 불거진 교황청과 기사단의 갈등을 가리킨다. 1000년 가까운 역사의 몰타기사단은 빈민들에게 콘돔을 나눠준 것을 문제삼아 지난해 12월 알브레히트 폰 뵈젤라거 부단장을 해임했다. 가톨릭 보수파는 낙태는 물론이고 콘돔을 쓰는 것 같은 피임조차도 교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뵈젤라거 부단장은 해임이 부당하다고 주장했고, 교황청은 조사위원회를 꾸렸다. 그러자 기사단은 교황청이 내부 일에 간섭한다고 반발했다. 매튜 페스팅 기사단장은 간부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황이 임명한 위원회는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풀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했고, 교황청은 “항명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내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콘돔게이트’로까지 번진 이 사건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대표하는 개혁세력과 이에 불만을 품은 보수세력의 대리전 성격이 짙었다. 몰타기사단은 교단의 전통과 서열을 중시한다. 특히 교단 내 대표적인 보수파인 미국 출신 레이먼드 버크 추기경은 2014년 몰타기사단의 사제로 임명된 뒤 교황과 줄곧 대립했다. 버크 추기경은 지난해 9월 교황에게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는 이혼 문제 등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한 적도 있다. 이 물음에 분명히 답변하지는 않았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혼모가 낳은 아기의 세례를 거부한 사제들을 일갈한 적 있고 이혼한 사람들, 동성애자들도 교회가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문제를 놓고 2014년과 2015년 바티칸에서 세계의 주교들이 모여 시노드(주교회의)를 열고 토론을 한 뒤 ‘절충안’에 타협하기도 했다.
 두 달에 걸친 교황청과 기사단의 갈등은 지난달 24일 페스팅 단장이 교황과 만난 후 사임하면서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벽보 사건으로 보수-개혁파 간 갈등이 다시 표면에 떠올랐다. 특히 이번 사건은 교황청이 몰타기사단에 교황 대리인으로 안젤로 비시우 추기경을 파견하기 직전 불거졌다. 기사단 측은 교황이 버크 추기경을 배제시키기 위해 비시우를 파견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교황청은 벽보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교황과 가까운 안토니오 사파다로 신부는 트위터에 “교황이 일을 잘 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거슬리게 한다는 신호”라고 썼다.
 바티칸에선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을 둘러싼 내부 알력이 적지 않게 터져나왔다. 2015년에는 바티칸의 방만한 재정과 성직자 부패를 지적한 교황청 기밀문서가 누출되는 ‘바티리스크’가 일어나, 보수파의 편을 들어온 기자 등이 기소됐다.

 

■몰타기사단이란
 성요한기사단으로도 불린다. 11세기 십자군 원정 때 순례자 구호 등을 목적으로 생겨났다. 한때 지중해의 로도스 섬을 정복해 독립국가로 존재했지만 오스만제국 시절 쫓겨나 몰타로 옮겨갔고, 그후 나폴레옹의 공격으로 로마로 밀려났다. 현재는 회원 1만3500명, 직원과 자원봉사자 10만여명을 거느리고 120여국에서 병원 등 자선활동을 하고 있다. 교황에 순응을 서약한 평신도 단체이지만, 교황청을 포함해 세계 100여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은 주권국가라는 독특한 지위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