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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전후 일본 '반전평화'의 하이쿠 시인 가네코 도타 별세

 일본 전통시가 하이쿠(排句) 시인으로 평생 반전·평화를 호소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군국주의 시도를 비판했던 가네코 도타(金子兜太)가 지난 2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8세.
 가네코는 2차 대전 후 일본 하이쿠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전쟁과 서민들의 애환 등 사회성 짙은 주제를 전통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 하이쿠의 영역을 넓힌 것으로 평가된다.
 1943년 도쿄제국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일본은행에 입사했으나 이듬해 해군 장교로 남태평양 추크제도(트럭섬)에 부임, 그곳에서 2차 세계대전 종전을 맞았다. 일본으로 돌아온 뒤 일본은행에서 일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전쟁의 비참함이나 인간의 아름다움 등을 노래, 전후 재건의 길을 걷던 일본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고 NHK는 전했다.
 고인은 특히 ‘사회성 하이쿠’에 힘을 기울이면서 전위 하이쿠 운동의 기수 역을 맡았다. 전통적인 하이쿠의 계어(季語·계절을 상징하는 단어)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계어가 없이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읊는 자유로운 표현의 하이쿠도 적극적으로 읊었다.
 평생 작품을 관통한 평화·반전의 메시지의 원점이 된 것은 20대 때의 전쟁 체험이었다. 그는 추크제도에서 미군의 폭격과 식량 부족으로 죽어가는 전우들을 보면서 전쟁의 잔인함과 공허함을 뼛속 깊이 새겼다.
 패전 후 15개월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섬을 떠나는 선박 위에서 읊은 “수맥(水脈)의 끝, 염천(炎天)의 묘비를 두고 떠난다”는 그의 대표작이 됐다. 그는 또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급강하하는 갈매기의 모습을 격추된 제로센(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전투기)의 모습에 빗대 “아침 시작되는 바다에 돌입하는 갈매기의 죽음”이라는 하이쿠를 짓기도 했다.
 전후 70년을 맞이한 2015년부터는 도쿄신문 지면에 평화에 대한 마음을 담은 작품을 선별해 게재하는 ‘평화의 하이쿠’를 진행했다. 같은 해 집단자위권 법안을 밀어붙이는 아베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담은 ‘아베 정치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구호를 붓글씨로 쓰기도 했다. 작가 사와치 히사에(澤地久枝)가 구상한 이 구호는 법안 반대 시위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일본의 출판사가 선정하는 ‘올해의 유행어’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인은 1955년 출간한 첫 시집 후기에서 “내 하이쿠가 평화를 위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것이길 바란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