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민들이 지난 16일 도쿄 정부 청사 앞에서 모리토모학원 의혹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발걸음이 꼬이고 있다. 개헌론이나 북한 위기론, 일하는 방식 개혁 등 ‘아베표 의제’를 밀어붙이는 가운데 앞뒤가 맞지 않는 언행들이 잇따르면서다. 야당에선 ‘니마이지타(二枚舌·혀가 두 개) 총리’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아베 1강’ 체제의 오만과 독선, 전쟁가능국을 향한 속내가 드러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①헌법 개정
아베 총리는 지난 5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자위대를 명기한 것(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부정되더라도 이(자위대 합헌)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郞) 희망의당 대표가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한 개헌안이 국민투표로 부결되면 자위대의 위헌성이 확정되는 것”이라고 지적하자 이런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아베 총리는 최근 연내 발의를 목표로 ‘개헌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다. 헌법 9조의 1항(전쟁 포기)과 2항(전력 보유 불가)을 그대로 둔 채 자위대의 근거를 명기하는 3항을 신설하는 쪽이다. 그런 그가 국민투표로 개헌안이 승인돼도, 부결돼도 자위대는 합헌이라고 한 것은 개헌 자체의 필요성을 흔드는 모순된 논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쓰카 고헤이(大塚耕平) 민진당 대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할 합리성이 없어지고, 국민투표를 할 설득력이 결여된다”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의 발언이 ‘자위대의 근거 명기’를 명분으로 개헌의 물꼬를 터 일본을 전쟁가능한 국가로 바꾸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자위대 근거를 명기하는 새 조항이 9조에 더해지면 자위대의 활동 확대에 제동을 걸어온 2항이 사문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②북한 위기론
아베 총리가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들고 있는 ‘북한 위기론’을 두고도 정부 내에 모순이 드러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0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북한 정세의 ‘위기적 상황’을 누차 강조했다.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는 북한과 ‘모든 선택지’를 부정하지 않는 미국 사이에 긴장이 극도로 높아질 수 있다고 호소했다.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 선거를 치르는 이유에 대해서도 “올 연말에서 내년까지 선거를 할 상황이 아니게 된다”고 했다.
반면 방위성은 같은해 11월 한 자위대원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북·미 무력충돌 가능성에 대해 “추상적 가정”이라는 답변을 제출했다. ‘존립위기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현 시점의 국제정세”를 이유로 “상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입헌민주당 대표는 지난 14일 “한편에선 당장이라도 미사일이 날아올 것 같은 위기를 부채질하면서, 한편에선 구체적 위기는 없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다”면서 “니마이지타 아니냐”고 비판했다.
③재량노동제
아베 총리는 지난달 29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재량노동제 하의 노동자 근무시간이 일반 노동자보다 짧다는 데이터도 있다”고 말했다가 야당의 추궁이 이어지자 답변을 철회하고 사과했다.
아베 총리가 근거로 삼은 후생노동성 자료는 재량노동보다 일반노동 시간이 길게 나오기 쉬운 설문조사를 기초로 한 것으로 밝혀졌다. 19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 설문조사는 일반노동자에 대해선 ‘1개월 사이 최장 잔업시간’을 물은 데 반해 재량노동하의 노동자에 대해선 단순하게 하루 노동시간을 물었다. 질문 자체가 다른 조사 결과를 단순 비교해 답변의 근거로 한 셈이다.
재량노동제는 실제 일한 시간이 아니라 미리 정해 놓은 시간 만큼 임금을 주는 제도다. 일본 정부가 노동자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확대를 추진 중이지만, 수당 없는 노동시간만 늘린다는 비판이 많다. 결국 아베 정권이 가장 중요한 법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을 밀어붙이기 위해 자신의 입맛에 맞춘 부적절한 자료까지 동원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④모리토모 스캔들
아베 정권의 이중적 행태는 아베 총리 부부가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모리모토(森友) 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각 문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9일 재무성 긴키(近畿)지역 재무국이 모리토모 학원 측과 국유지 임대계약을 맺을 당시 상황이 담겨 있는 문서 20건이 공개됐다. 앞서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전 재무성 이재국장(현 국세청장)은 국회에서 협의 기록 요청이 있을 때마다 “학원 측과 협의했던 기록은 폐기했다”고 답해왔던 터여서 비판이 잇따랐다.
야당에선 ‘허위 답변 의혹’을 이유로 사가와 청장의 국회 소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여당은 거부하고 있다.
지난 10~11일 산케이·후지네트워크뉴스 여론조사에선 사가와 청장이 국회에 출석해야 한다는 응답이 85.7%에 달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취하고, 비판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아베 정권의 ‘이중성’이 상징적으로 드러났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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