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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뛰는 일본 경제](3)로봇·AI 기술 혁신 박차…“기업 넘어 사회가 연결돼야”

 “민트, 이리와” “사쿠라, 손!”
 11일 도쿄 긴자(銀座) ‘소니 스토어’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로봇개 ‘아이보(aibo)’의 판매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온라인 판매만 진행되는데도 ‘실물’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렸다.
 아이보는 1999년 출시돼 2006년까지 15만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대화형 로봇이다. 이번에 성능을 개선해 12년 만에 재출시됐다. 신형 아이보는 주인의 움직임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 애교를 부린다. 손을 내밀고 “손”이라고 말하면 앞발을 올리고, “잘했다”고 목이나 등을 쓰다듬자 기분 좋은 듯 눕거나 “왕왕” 짖기도 했다. 3차례에 걸친 예약판매가 완판될 정도로 인기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니는 아이보의 해외 판매도 고려 중이다.
 로봇 시장 개척은 소니만이 아니다. 감정 인식이 가능한 소프트뱅크의 인간형 로봇 ‘페퍼’는 도쿄 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소프트뱅크는 AI를 탑재한 청소로봇도 개발하고 있다. 도요타도 대화형 로봇 ‘키로보 미니’, 원격조종형 로봇 ‘T-HR3’을 지난해 선보였다. NHK는 “제조업에서는 아시아에, 정보기술(IT)에선 미국에 밀린 일본 기업이 로봇 시장을 발판으로 역습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20년 불황’에서 탈출하고 있는 일본의 모색은 ‘현재진행형’이다. 저출산고령화, 잠재성장율 저하 등 문제가 산적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과감한 통화·재정정책으로 경기를 진작시키는 한편,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생산성 혁명’과 ‘인재만들기 혁명’이 두 축이다. ‘생산성 혁명’의 주력 분야가 로봇, 사물인터넷(IoT), AI 등 차세대 기술이다. 4차 산업혁명 대응전략의 근간이기도 하다. 이와모토 코이치(岩本晃一) 경제산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인구 감소와 저출산고령화로 노동투입기여도가 계속 마이너스로 예상된다”며 “잠재성장력을 높이는게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이고, 그 핵심이 4차 산업혁명”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전세계 산업용 로봇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독일, 미국과 함께 로봇 3대 강국이다. 이런 강점을 살려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다. 로봇으로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는 한편,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미래산업으로 육성,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15년 ‘로봇신전략’을 통해 2020년까지 1000억엔(약 9600억원)을 관련 프로젝트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지배하는 AI 분야에도 힘을 쏟고 있다. 2016년 4월 범부처기구인 ‘인공지능기술전략회의’를 출범시켰다. 산하에 이화학연구소의 혁신지능통합연구센터(AIP)가 AI 기초 연구를, 일본산업기술종합연구소가 응용 연구, 정보통신연구기구가 뇌 과학과 언어 처리 연구를 담당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AIP는 100명의 AI 전문 연구인력을 충원했다. 일본 정부는 자율주행자동차나 로봇 등에 적용되는 AI 개발을 위해 2018년도 예산안에 1006억5000만엔의 관련 항목을 반영했다.
 IoT 분야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2016년 4월 독일과 ‘IoT/인더스트리 4.0’ 협력에 관한 공동성명을, 그해 10월 미국과 IoT 분야 협력 각서를 체결했다. IoT를 사용해 기계의 가동상황을 시각화하거나 고장을 방지하는 혁신작업들도 이뤄지고 있다. 미쓰비시전기 나고야제작소의 e팩토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6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2017년 미래성장전략’을 채택하면서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사회상으로 ‘소사이어티(Society) 5.0’을 내놓고, ‘커넥티드(Connected) 인터스트리’를 산업 형태로 제시했다. 다양한 업종, 기업, 사람, 기계, 데이터를 연결시키고, AI 등에 의해 새로운 상품, 서비스를 창출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각부 종합과학기술이노베이션 회의(CSTI)를 사령탑으로 정부 내 프로젝트 및 위원회, 산업계와 연계해 추진책을 구체화하고 있다. 일본이 범정부 차원에서 민관학 협력 체계를 구축하려는 것은 그만큼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모토 연구원은 “과거 20년 간 일본 전기사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패했다”면서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질 경우 순식간에 침몰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같은 사회상은 아직은 먼 얘기다. 일본에선 여전히 모노즈쿠리(장인정신)에 집착해 ‘오픈 플랫폼’(열린 운영체계)과 ‘융합’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 대비가 폐쇄적이란 분석이 있다. AI 분야에 필수적인 빅데이터의 활용이 더디고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경제 소식통은 “IoT 등 차세대 기술이 각 기업을 뛰어넘어 사회 전체를 연결하는 데까지 나가지 못하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