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호세이(法政)대학 4년생인 고토 료스케(後藤亮介·22)는 지난여름부터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서클 활동에 참여하면서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도 했다. ‘사회인’이 되기 전 얼마 남지 않은 대학 생활의 추억을 남기고 싶단 생각이다. 고토는 오는 4월 도호쿠(東北) 지역의 방송사에 입사할 예정이다. 3학년 때인 2016년 12월 ‘슈카쓰’(就活·취직 활동의 줄임말)에 들어가 5개월 만인 지난해 5월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미 유명 자동차판매회사에도 합격했지만, 방송사 입사를 택했다. 그는 “친구들을 봐도 1곳만 합격한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동급생 중에는 취직 활동 1개월 만에 합격 통지를 받은 경우도 있다. 2008년 리먼 쇼크로 일본 경제가 불황에 빠졌을 때 사촌형이 취직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본 고토로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한 게 실감이 안 난다. 그는 “사장으로부터 도중에 그만두지 않을 거 같아 합격시켰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웃었다.
고토의 사례는 올 3월 졸업을 앞둔 일본 대학생들의 일반적 모습이다. 일본에선 ‘구직자 우위’의 고용시장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은 오라는 곳이 많아 ‘선택지’가 넓어졌다. 기업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신입사원 확보가 한층 어려워지고 있다.
일본 고용시장은 최고조다. 실업률은 지난해 11월 2.7%로 1993년 11월 이후 24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다. 지난해 11월 유효구인배율(구인자 수를 구직자 수로 나눈 수치)은 1.56을 기록해 1974년 1월(1.64) 이후 가장 높다. 구직자 1명당 일 자리가 1.56개란 뜻이다.
대졸 예정자들의 취업 내정률도 증가했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재 취업 희망 대학생들의 취직 내정률은 75.2%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포인트 올랐다. 이는 문부과학성이 1997년 3월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대 수치다. 지난해 봄 대학 졸업자 56만7459명 중 76.1%인 43만2088명이 취업, 24년 만에 가장 높은 대졸 취업률을 기록했다. 최근 고용시장 호조를 감안하면 올봄 대졸 취업률도 지난해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고용시장의 ‘훈풍’은 저출산·고령화로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경기 회복으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 8726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일본의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16년 7656만명으로 줄었다.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49년 출생)가 대거 은퇴한 것도 노동력 부족을 심화시켰다.
반면 엔저와 세계적 수요 확대로 호황인 기업들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거의 다 취업이 되다 보니 대학생들은 회사 선택에 신중하다. 고토는 “취직이 당연하다 보니 기업의 잔업이나 휴가 등 근무환경을 꼼꼼히 따지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기업의 내정을 받은 뒤에도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취직 활동을 계속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최종 합격이 됐다던 제자가 아직까지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다”면서 “주변에서 어차피 해당 기업도 내정자가 모두 입사할 거라고 생각 안 하니까 더 나은 곳을 찾아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취직정보사이트 리쿠르트커리어가 지난해 10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개 이상의 내정 취업처에 입사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대졸 예정자의 비율은 64.6%나 됐다
반면 기업들은 “제발 우리 회사로 와달라”고 일손 확보에 목을 매고 있다. 모집을 해도 응모가 없거나, 입사했다가 익숙해질 만하면 그만두는 신입사원도 속출하고 있다. 일본상공회의소가 중소기업 4072개사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68.7%가 “인력 부족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기업에선 ‘보험용’으로 내정자 수를 더 늘리는 건 흔한 일이다. 3일 휴일제나 재량근무제 도입 등 인력 확보와 이직 방지를 위해 복리후생에 신경을 쓰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오와하라’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끝내라’는 뜻의 일본어 ‘오와레’와 ‘괴롭힘’을 의미하는 영어 ‘하라스먼트(harassment)’의 합성어다. 기업에서 졸업 예정자들에게 취직을 약속하는 대신 구직 활동을 끝내도록 서명 등을 강요하는 상황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기업을 더 이상 꾸려나가지 못하는 중소기업들도 늘고 있다. 데이코쿠(帝國)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일손 부족을 이유로 도산한 기업은 2017년 1~11월 90건으로 2016년 전체 72건보다 많았다.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최고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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