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나고야(名古屋)시의 한 쇼핑센터에서 쌀과 수박, 캔맥주, 세제 등 200여 점, 7만엔(약 66만원) 어치를 훔친 남자 2명이 경찰에 구속됐다.
이들은 일본 최대 폭력조직인 야마구치구미(山口組)에서 떨어져나온 나온 고베(神戶)야마구치구미 산하 조직의 조직원이었다. 함께 절도를 했던 두목(당시 55세)은 현장에서 잡히고, 달아난 두 사람은 방범카메라에 찍히는 바람에 나중에 검거됐다. 이들 중 한 명은 “자금에 쪼들려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고 NHK는 전했다.
■돈줄 말라 두목이 절도, 연어알 도둑질도
일본 조직폭력배 야쿠자의 처지가 갈수록 곤궁해지고 있다. 돈에 쪼들려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슬쩍하거나 연어 부화장에서 연어알을 훔치다가 붙잡히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돈이 없어 권총을 파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조직원이 줄어 조직을 해산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NHK에 따르면 홋카이도(北海道) 기요사토(淸里)에선 지난달 지정폭력단 스미요시카이(住吉會) 계열 조직폭력단의 40대 간부 등 3명이 연어 부화장에 몰래 들어가 연어 37마리와 연어 알 40여㎏을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 붙잡힌 간부는 “자릿세 등이 걷히지 않아 요즘은 연어와 알을 훔쳐 돈으로 바꿔 상납하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홋카이도에서는 폭력단이 관련된 불법 어로와 연어알 도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방에선 자금줄이 봉쇄돼 조직원이 크게 주는 바람에 해체되는 조직도 나오고 있다. 홋카이도 기타미(北見)시의 지정폭력단 이나가와카이(稻川會) 계열의 호시가와(星川)파는 한때 100여 명의 조직원을 거느리며 유흥업소나 음식점으로부터 보호비와 자릿세 등을 뜯으며 세를 불렸다. 하지만 자릿세를 내는 곳이 점점 없어지면서 최근에는 조직원이 4명으로 격감, 지난 8월 두목이 조직의 간판과 함께 해산신고서를 현지 경찰서에 제출했다. 당시 두목은 “이제 야쿠자가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 폭력단만 사정이 어려운 게 아니다. 도쿄(東京) 에도가와(江戶川) 구에 거주하는 스미요시카이 산하 조직의 두목은 권총 3정을 다른 조직원에게 80만엔에 판매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 두목은 “돈이 없어 권총을 팔려고 한다”며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조직원이 3명으로까지 줄어들면서 생활비에 쪼들리자 권총을 판 것으로 보고 있다. 지정폭력단 산하 단체의 한 간부는 “도쿄에서도 번화가 등에 영역을 갖지 못한 동네 야쿠자는 자금 사정이 어렵다. 예전에는 힘이 있던 조직도 최근에는 조직원이 줄어 위기 상태인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단속 강화로 돈줄 막혀…새로운 범죄에 손댈 우려도
야쿠자 조직이 궁핍한 상황에 몰린 배경에는 당국의 단속과 폭력단 배제 조례 등 규제 강화가 있다. 조례 제정으로 유흥업소나 음식점 등에서 돈을 뜯기 어려워진 데다 기업들도 ‘교제’를 끊고 있다는 것이다. 상납금을 마련하지 못해 조직을 떠나는 조직원이 끊이지 않는 데 비해 조직에 들어오겠다는 젊은이가 없는 것도 조직의 쇠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선 폭력단 간부는 “마음 약한 두목들은 ‘조직을 해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면서 “야쿠자 사회도 일부 승자만이 살아남는 ‘1강 체제’가 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실제 경찰청에 따르면 폭력단의 조직원수는 지난해말 현재 약 1만8100명으로 10 년전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다만 조직원수는 줄고 있지만, 이 가운데 70%를 야마구치파, 고베야마구치파, 스미요시카이, 이나가와카이 등 4개 조직이 점하고 있다. 특정 조직이 비대화해 독과점적 상황이 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한 것이다. 실제 올해 9월에는 고베야마구치구미에서 이탈한 닌쿄(任俠)야마구치구미의 보디가드가 고베 시내에서 총격을 당해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없던 수법의 범죄가 나타나 시민을 위협할 우려도 있다. 예전에는 보호비나 불법 카지노, 각성제 밀매가 야쿠자의 주요 수입원이었지만, 최근에는 조직원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조직범죄나 입금 사기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미에(三重)현 욧카이치(四日市)시에선 폭력단원 등 8명이 올 1월까지 1년7개월간 대형 SUV 등 자동차 8대를 훔친 혐의로 체포됐다. 폭력단원은 “생활비 등이 필요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편의점 등에 설치된 현금자동인출기(ATM)에서 현금 18억엔이 일제히 인출된 사건으로 폭력단원들이 체포되기도 했다.
여기에 자금원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마약 밀매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NHK는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에선 지난해 5월 단일 압수량으로는 최다인 600㎏의 각성제가 오키나와(沖繩)현 나하(那覇)시 항구에 정박 중인 요트에서 압수됐다. 또 지난 7월에는 중국으로부터 요코하마(橫浜)항에 들어온 컨테이너에서 350㎏, 8월에 이바라키(茨城) 현 히타치나카시 앞바다에서 배로 운반된 각성제 480㎏이 압수되는 등 마약밀수 적발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 사건 모두 밀수경로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경찰은 폭력단이 관련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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