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등학생용 책가방 ‘란도셀’은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핫 아이템’이다. 수십만 원대에 이르는 가격으로, 학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등골 브레이커’로도 꼽힌다. 그런데 일본에선 이 란도셀이 진짜 초등학생들의 등골을 휘게 하고 있다. 무거운 란도셀 때문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초등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최근 병원이나 접골원을 찾아 요통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운동 부족, 나쁜 자세와 함께 ‘무거운 란도셀’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신문에 따르면 11월 중순 지바(千葉)현 가마가야(鎌ケ谷)시의 한 접골원에 초등 1학년 남자아이가 진료를 받으러 왔다. 이 아이는 수업시간에 오래달리기를 한 뒤 무거운 것을 들다가 허리가 갑자기 아팠다고 설명하면서 “란도셀이 너무 무겁다”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 접골원 사사키 준(佐佐木純) 원장은 “지금까지 부 활동으로 허리를 다친 학생은 있었지만, 최근에는 운동을 하지 않는 아이들의 요통이 두드러진다”면서 “병원을 찾는 아이들만 최근 3년 간 4배 가까이 늘었다”고 밝혔다.
아이들의 란도셀 무게를 재본 결과 교과서나 노트 등을 넣으면 평균 5㎏ 정도가 됐다. 고학년의 경우 자료집이나 지도책까지 더해지면서 6㎏을 넘는다. 사사키 원장은 “체구가 작은 아동에게는 커다란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발꿈치 쪽에 중심을 두고 걷는 등 자세가 나쁜 아이들은 무거운 란도셀을 메면 허리가 휘어져 요통으로 연결되기 쉽다. 이들 가운데는 허리가 삐긋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한다. 학부모들도 이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2015년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학부모들이 가장 걱정하는 아이들의 자세로는 ‘고양이등’(새우등)이 70%(복수응답)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란도셀 자체가 무거운 탓은 아니다. 최근 란도셀은 경량화하고 있다. 란도셀 내용물이 갈수록 무거워 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교과서 회사들의 단체인 교과서협회 측은 “교과서의 분량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에선 2010년 대 들어 주입식 교육 탈피를 위해 학습내용과 수업시간을 줄인 ‘유도리 교육’을 폐기하면서 교과서가 두꺼워졌다. 교과서협회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주요 4과목(국어, 산수, 사회, 이과) 교과서의 총페이지수는 4896페이지로, 10년 전에 비해 35% 증가했다. 지도나 사진을 많이 활용하는 시각화가 진행되면서 교과서의 크기가 커진 것도 교과서의 무게를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교재를 학교에 두고 다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도난을 우려해 교과서뿐만 아니라 다른 교재도 집에 들고 가도록 지도하는 초등학교도 많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 일부 초등학생은 주말이 되면 란도셀을 멘 채 멜로디언, 그림도구 세트, 실내화를 양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월요일에는 다시 들고 등교한다. 교재를 학교에 두고 가는 데 대한 정부 차원의 규정도 없다. 문부과학성 측은 “교재를 들고 하교할지 말지는 각 학교의 판단이다. 다만 체구가 작은 저학년에 대해선 상황을 잘 살펴서 판단하길 바란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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