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여성 시의원이 갓난아이를 안은 채 시의회에 참석했다가 다른 의원들의 퇴장 요구에 결국 아이를 다른 사람에 맡기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 사회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와 일·육아의 병립 문제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23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전날 구마모토(熊本) 시의회 오가타 유카(緖方夕佳·42) 의원은 생후 7개월 된 아들을 안은 채 본회의에 참석했다. 이에 동료 의원들은 의회에서 퇴장하라고 요구했으나 오가타 의원은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시의회 의장과 운영위원회 위원들이 회의를 열고, 본회의에는 의원만 입장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거듭 퇴장을 요구했다. 결국 오가타 의원은 아이를 회의장 밖에 있던 친구에게 맡겼고, 본회의는 예정보다 40분 가량 늦게 시작됐다.
초선인 오가타 의원은 임신 중이던 작년부터 아기를 데리고 시의회에 참석할 수 있는지 의회 사무국에 문의했지만, 긍정적인 대답이 나오지 않지 이날 ‘아기 동반 등원’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오카다 의원은 “육아 세대를 대표해 아이와 함께 의회에 참석해 발언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자고 주장하고 싶었다”며 “육아 여성도 활약할 수 있는 시의회가 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번 일은 찬반 논쟁을 일으켰다. NHK에 따르면 인터넷 상에선 “회의 중에 아기가 울더라도 흐뭇하게 지켜보면서 협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 육아는 전체 사회가 하는 것” “여성이 일하기 좋고, 육아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의회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라고 지지 의견이 나왔다. 반면 “일반 회사에서도 회의 중에 갑자기 아기가 들어오면 놀랄 수 밖에 없다” “사전에 조정하지 않은 것은 주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라는 반대 의견도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여성의 정치 참여를 쉽게 하도록 제도나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여성 의원이 아이를 데리고 의회에 참석하는 사례는 서구 사회에선 드물지 않다. 호주 상원은 지난해부터 여성 의원이 회의에서 자녀를 돌볼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고, 최근 한 여성 의원이 처음으로 생후 11주 된 아이를 안고 회의장에 들어와 수유를 했다. 뉴질랜드 의회도 이달 규정을 바꿔 여성 의원 2명이 회의장에 아기를 데리고 들어와 수유했다. 뉴질랜드 국회의장은 여성 의원이 데리고 온 생후 3개월 아기를 데리고 회의를 진행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스기타 히로야(杉田弘也) 가나가와대 교수는 NHK 인터뷰에서 “호주에서는 여성 의원이 늘기 시작한 1990년대에 ‘헬스장은 있으면서 탁아시설은 왜 없냐’고 문제를 제기한 것을 계기로 논의가 진행돼 최근에는 수유까지 인정됐다”면서“일본에선 의원이 출산하는 것조차 비판을 받고 있어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데 장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타 게이코(太田啓子) 변호사는 도쿄신문에 “일본에서는 여성이 일과 육아를 양립하기 어려운 환경이 있다”며 “의회가 솔선해서 양립 가능한 환경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일은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여성이 활약하는 사회 구현’을 주요 과제로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대비된다. 아베 총리는 지난 3일 이날 도쿄에서의 ‘국제여성회의(WAW) 2017’에서 “일본이 세계에서 여성활약의 기치를 높이 들어 강한 지도력을 발휘해 갈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회의에 첨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발의한 여성기금에 57억엔(약 560억원)을 거출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의회연맹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으로 일본 중의원에서 여성 의원의 비율은 9.3%로 조사 대상인 193개국 중에서 165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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